사무엘 하 7장 18절-24절, 주석 및 해설 정리
사무엘 하 7장 18절부터 24절까지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을 세워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후 다윗이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와 겸손한 고백을 올려 드리는 장면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하며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높이 찬양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개역개정 성경으로 읽고 묵상하며 주석과 해설을 참조하였습니다.
사무엘 하 7장 18절-24절, 주석 및 해설 정리
사무엘 하 7장 18절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여호와 앞에
이 말은 하나님의 궤를 안치해 둔 장막(6:17) 앞을 가리킨다. 아마도 성막(tabernacle)으로 친다면 그 앞의 바깥뜰(출 27:9-19) 정도에 해당할 것이다(Pulpit Commentary).
앉아서
이 말은 다윗이 하나님의 궤 앞에서 반드시 앉아서 기도했음을 증명해 주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1) 유대인들은 좀처럼 앉아서 기도하지 않았으며(왕상 8:22, 느 8:4, 9:4), (2)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솨브’도 반드시 ‘앉아 있다’는 뜻이 아니라 ‘머물러 있다, 지체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말은 다윗의 기도 ‘자세’를 묘사하는 말이 아니라 다윗이 시간을 내어 기도한 ‘행위’ 자체를 묘사하고 있는 말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Lange, Wycliffe).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다윗은 그의 기도 첫 마디에서 위대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비천한 자신을 대조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그의 대조적인 표현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푸신 놀라운 약속이 자기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과분한 은혜와 축복임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크게 감사하는 마음 자세에서 나온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서 다윗의 기도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과 감사로 시작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창 32:10, 시 8:5, 144:3).
사무엘 하 7장 19절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있을 먼 장래의 일까지도 말씀하셨나이다 주 여호와여 이것이 사람의 법이니이다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여기서 ‘이것’이란 곧 이어 나오는 ‘먼 장래의 일’과 대조되는 것으로 다윗과 그 가정이 현재 누리고 있는 복을 의미한다. 즉, 다윗은 여기에서 하나님이 그에게 베푸신 현재의 복도 감당하기 어려운 데 거기에다가 미래에 대한 더 큰 보장까지 해주신 데 대해 크게 감격하고 있는 것이다.
장래의 일
이에 해당하는 ‘레메라호크’는 ‘미래에 관한 일’이란 뜻이다. 원래 이 말의 기본 뜻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법이니이다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조트 토라트 하아담’을 직역하면, ‘이는 인간의 율례입니다’이다. 그러나 이 말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다음과 같이 해석이 분분하다. (1) ‘토라’를 율례로 보지 않고 ‘교훈’으로 해석하는 견해이다. 따라서 이 견해에 따르면, 이 말은 ‘주 여호와여, 인간이 그 이웃에게 교훈을 하듯이 당신의 원대한 뜻을 깨닫게 하셨나이다’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성경에서 ‘토라’가 교훈이란 의미로 사용된 적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 견해는 옳지 않다. (2) ‘토라’를 인간의 도리, 또는 관습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이 말은 ‘주 여호와여 당신은 사람의 도리, 즉 사람이 자기 후손의 장래를 축복하듯 나와 내 가문에 축복을 베푸셨나이다’라는 뜻이 된다(Clericus). (3) 본 절을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은 전 인류를 지배할 명령입니다’라고 해석하는 견해이다(Pulpit Commentary, Vulgate). 그러나 이는 전체 문맥과는 약간 동떨어진 주관적인 해석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4) ‘토라’를 구약 성경에서 대개 그러하듯 하나님의 율례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이다. 그럴 경우 여기서의 ‘토라’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레 19:18, 미 6:8)는 인간 상호 간의 규례로 보아야 한다(Keil, Hengstenberg). 따라서 이 견해에 의하면, 본 절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규례에 따라 한 인간이 이웃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풀어 줌과 같이 주 여호와께서 나에게 극진한 사랑과 친절을 베푸셨나이다’라는 뜻이 된다(Lange). 이상에서 본 절의 전후 문맥과 비교적 일치되는 견해는 (2)와 (4)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평행 구절인 대상 17:17에 의거할 때 보다 타당성을 지니고 있는 견해는 (4)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사무엘 하 7장 20절
주 여호와는 주의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종을 아시오니 …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다윗은 그 마음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벅찬 감사를 도저히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깊은 감사의 마음을 말로 나타내기 보다는 자신의 속마음까지도 아시는 하나님의 전지(全知)하신 속성에 호소하고 있다(시 139:1-4, 요 21:17).
사무엘 하 7장 21절
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나이다
이 모든 큰 일
여기에서 ‘이 모든 큰 일’이란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계시’(4-17절)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계시를 ‘큰 일’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 계시가 (1) 시공간(視空間)을 초월한 하나님의 우주적(宇宙的)인 계획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며 (2) 또한 다윗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은혜였기 때문이다.
사무엘 하 7장 22절
그런즉 주 여호와여 주는 위대하시니 이는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신이 없음이니이다
주 외에는 신이 없음이니이다
과거 모세가 토로(吐露)하였던 것과 같은 신앙 고백이다(출 15:11). 물론 다윗은 그의 조상들로부터 신은 오직 하나님 뿐이라고 들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여기서는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다.
사무엘 하 7장 23절
땅의 어느 한 나라가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으리이까 하나님이 가서 구속 하사 자기 백성으로 삼아 주의 명성을 내시며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주의 땅을 위하여 두려운 일을 애굽과 많은 나라들과 그의 신들에게서 구속하신 백성 앞에서 행하셨사오며
23절의 개요
다윗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분명한 역사적 근거를 보여 준다. 즉 여기에서 다윗은 과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어떻게 인도하시고 세우셨는가를 회상하며 그의 은혜를 묵상하고 있다.
땅의 어느 한 나라가 … 같으리이까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점은 이스라엘의 위대성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대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총이다. 즉, 다윗은 여기에서 그 어떤 나라도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을 누리지 못하였음을 밝힘으로써 예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총을 찬송하고 있다.
주의 명성을 내시며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건져 내시며(출 12장) 대적들의 위협에서부터 보호해 주시는 것과 같은 구속적인 사역을 통하여 당신이 참된 하나님이심을 열방 중에 스스로 증거 하신 것을 의미한다(신 4:39, 수 2:11).
사무엘 하 7장 24절
주께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세우사 영원히 주의 백성으로 삼으셨사오니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주의 백성으로 삼으셨사오니 …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이것은 과거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 맺은 시내 산 언약의 주제이다(출 19:5, 신 7:6, 14:2, 26:18). 그러나 우리는 본 절이 단순히 시내 산 언약에 대한 다윗의 회상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본 절에 나타난 언약의 주제는 시내 산 언약의 주제보다 더 발전되고 성취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시내 산 언약 체결 당시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겨우 구원받은 백성에 불과했으나 이제 다윗 언약이 수여된 시점에서는 모든 대적들을 물리친 통일 국가이며 공의와 사랑으로 통치되는 성숙된 신정 국가였다는 사실이다. 그뿐 아니라 시내 산 언약에서는 이스라엘이 범죄 할 경우 반드시 형벌을 받으리라고 명시되어 있으나 다윗 언약에서는 이스라엘이 범죄 할지라도 하나님께선 사랑의 징계로써 인도하시겠다고 하는(14, 15절) 단계로 발전해 있다. 따라서 다윗의 이와 같은 고백은 단순히 시내 산 언약에 대한 회상이 아니라 그 언약을 다윗 통치하에서 더욱 발전시키고 구체화시킨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감사하는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