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하 14장 1절부터 20절까지의 말씀에는, 암논을 죽이고 그술 지방으로 도망갔던 압살롬이 요압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에 다시 돌아오도록 다윗의 허락을 받는 장면입니다. 가족 간의 비극이 잠시 종료되는 것 같지만,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남아 있습니다. 본문을 통독하고 주석과 해설을 참조하여 묵상하였습니다.
사무엘 하 14장 1절-20절, 주석 및 해설 정리
사무엘 하 14장 1절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로 향하는 줄 알고
요압이 … 향하는 줄 알고
여기에서 ‘향하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전치사는 ‘알’이다. 그런데 이것이 본 절에서 정확히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에 대하여서는 학자들간에 의견이 둘로 나뉜다. (1) 혹자는 이 전치사 ‘알’을 ‘대적하여’(against)란 뜻으로 이해한다. 그리하여 요압은 이 상황에서 압살롬에 대한 다윗 왕의 적개심을 알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해석하였다(Keil, Pulpit Commentary). 그러나 이 해석은 지지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문법상으로는 ‘알’이 ‘대적하여’ 또는 ‘싫어하여’란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지만, 이러한 해석은 본 문맥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이 해석은 압살롬에 대한 다윗 왕의 분노가 이미 누그러져 있었다고 언급한 13:39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2) 전치사 ‘알’을 ‘ … 에게로 향하는’으로 이해하여, 이는 다윗 왕의 자연스러운 부성애를 요압이 발견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견해이다(Lange). 이 해석은 전후 문맥과 잘 어울린다. 뿐만 아니라 여기서 ‘알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다’는 어떤 사실을 경험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이기 때문에, 이 동사 또한 새로운 상황의 변화를 제시하는 본 해석을 지지해 준다. 따라서 본 절은, 이제 암논 살해 사건 후 3년이 지나자(13:23-39) 다윗이 망명 생활을 하고 있는 압살롬에 대하여 염려하고 있는 것을 요압이 눈치챘다는 의미라 하겠다(Matthew Henry).
사무엘 하 14장 2절
드고아에 사람을 보내 거기서 지혜로운 여인 하나를 데려다가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상주가 된 것처럼 상복을 입고 기름을 바르지 말고 죽은 사람을 위하여 오래 슬퍼하는 여인 같이 하고
드고아
드고아는 예루살렘 남쪽 16 km, 베들레헴 남족 8 km 지점에 있는 고지대이다. 이곳은 선지자 아모스의 고향이자(암 1:1), 르호보암의 산성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대하 11:6).
지혜로운 여인
이는 생활의 지혜가 있고 민첩하며 재치 있는 여인을 의미한다. 한편, 이 여인의 거주지인 드고아는 요압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부터 약 2시간 거리였으므로, 아마도 요압은 일찍부터 이 여인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었을 것이다(Pulipt Commentary, Wycliffe Bible Commentary).
상복을 입고
여인의 아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기 위한 분장(扮裝)이다(6절).
사무엘 하 14장 3절
왕께 들어가서 그에게 이러이러하게 말하라고 요압이 그의 입에 할 말을 넣어 주니라
그의 입에 할 말을 넣어 주니라
요압이 이처럼 압살롬의 사면(赦免)을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것은, 압살롬이 차기의 왕이 되리라고 믿고 이 시점에서 그의 환심을 얻어 자기의 권력을 확고히 해두기 위함이었다(Leon Wood, Hertzberg). 이런 점에서도 요압은 자기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였음이 다시 한번 드러난다(3:27, 11:16). 만일 요압이 다윗에 대한 진정한 충성심이 있었다면 드고아 여인을 쓰는 대신 나단 선지자에게 이번 일을 부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요압은 그리하지 아니하고 그릇된 욕심과 스스로 해 낸 인간적 계책으로 이번 일을 도모하여, 그 결과 도리어 압살롬의 반란이라는 엄청난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다(15장).
사무엘 하 14장 4절
드고아 여인이 왕께 아뢸 때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르되 왕이여 도우소서 하니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는 곧 완전한 겸손과 헌신을 나타내는 히브리인들의 인사법이다(창 50:18, 왕하 4:37, 대하 20:18). 특히 여기서 드고아 여인이 다윗에게 이처럼 인사한 것은 왕께 대한 존경과 충성, 완전한 복종을 표시한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1:2, 9:6).
사무엘 하 14장 5절
왕이 그에게 이르되 무슨 일이냐 하니라 대답하되 나는 진정으로 과부니이다 남편은 죽고
나는 진정으로 과부니이다
이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여인의 거짓말이다. 즉 히브리 사회에서 과부는 고아와 더불어 특별한 동정과 보호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이 여인은 다윗의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과부로 가장한 것이다(신 14:29, 시 10:14, 68:5, 146:9, 사 1:17, 10:2, 욥 31:16, 18).
사무엘 하 14장 6절
이 여종에게 아들 둘이 있더니 그들이 들에서 싸우나 그들을 말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므로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쳐 죽인지라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쳐 죽인지라
여기에서 여인이 설명한 자기 아들의 죽음과 암논의 죽음(13:29)은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즉, 전자의 죽음은 쌍방 간의 싸움에서 일어난 과실치사(過失致死)이나 후자의 죽음은 상대방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몰래 계획한 모살(謀殺)이었던 것이다(13:23-29). 그러나 이 여인은 이러한 질적인 차이는 무시하고 사건의 결과만을 비유하여 말하고 있다. 이는 분명 압살롬이 암논을 살해한 죄 악성을 교묘히 경감시키려는 의도임에 틀림없다. 즉 드고아 여인은 다윗의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살해자에게 이롭도록 상황 설명을 전개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사무엘 하 14장 7절
온 족속이 일어나서 당신의 여종 나를 핍박하여 말하기를 그의 동생을 쳐 죽인 자를 내놓으라 우리가 그의 동생 죽인 죄를 갚아 그를 죽여 상속자 될 것까지 끊겠노라 하오니 그러한즉 그들이 내게 남아 있는 숯불을 꺼서 내 남편의 이름과 씨를 세상에 남겨두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
그의 동생 죽인 죄를 갚아 그를 죽여
형제끼리 서로 싸우다가 형이 동생을 쳐죽인 것은 물론 처음부터 계획된 살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동기에 있어서 이는 이미 상대방에 대한 미움이 수반된 분명한 살인이다. 따라서 동생을 살해한 형을 죽이겠다는 군중들의 주장은 율법의 규례에 따른 합당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민 35:16-19).
상속자
이에 해당하는 ‘야라쉬’는 ‘상속하다, 차지하다’는 말에서 유래된 단어로서 ‘씨’(seed)와 같은 뜻이다. 따라서 다른 말로는 ‘후사’(後嗣)로도 번역할 수 있다.
내게 남아 있는 숯불을 꺼서
여기서 숯불이란 가문(家門)을 이을 남은 아들을 비유한 말이다. 히브리 사회에서 대가 끊어진다는 것은, 그 가문에 속한 기업(基業)을 상실한다는 의미에서 가장 무서운 불행으로 간주되었다(마 21:38). 따라서 이러한 불행은 누구나 싫어하는 것이므로, 이와 같은 여인의 비유는 다윗의 나약한 감정을 움직이고도 남을 만했을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여기서 드고아 여인이 다윗의 나약한 감정에 호소하여 다윗으로 하여금 의와 진리의 율법을 주목하지 못하도록 본 비유를 말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비유의 사용은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발견하도록 비유를 사용했던 나단 선지자의 경우와는 아주 대조적이다(12:1-4).
사무엘 하 14장 8절
왕이 여인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가라 내가 너를 위하여 명령을 내리리라 하는지라
내가 너를 위하여 명령을 내리리라
이는 다윗 왕이 드고아 여인의 호소를 다 받아들여 그 남은 아들이 죽지 않도록 선처하겠다는 대답이다. 아마도 다윗은 드고아 여인의 큰 아들이 동생을 죽인 것은 처음부터 계획된 살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정상(情狀)을 참작, 동정을 베풀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6절, 민 35:22-28). 그러나 다윗의 이러한 사견(私見)이 압살롬에 대하여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압살롬은 암논을 고의적으로 살해했기 때문이다(13:22-29).
사무엘 하 14장 9절
드고아 여인이 왕께 아뢰되 내 주 왕이여 그 죄는 나와 내 아버지의 집으로 돌릴 것이니 왕과 왕위는 허물이 없으리이다
그 죄는 나와 내 아비의 집으로 돌릴 것이니
여기서 ‘그 죄’란 형제를 살해한 아들(6절)을 벌하지 아니한 죄, 곧 율법의 규정(민 35:16-19)대로 심판하지 아니한 죄를 의미한다. 즉 드고아 여인은 다윗이 살인을 저지른 자신의 아들을 선처(善處) 해 주겠다고 하자(8절), 행여라도 그로 인해 발생할 불상사는 다윗이 아닌 마땅히 자신과 자신의 집안이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공동번역). 따라서 본 절은 “이 살인죄를 벌하지 않은데 대한 잘못은 나와 내 아버지의 집에만 있습니다”라고 의역할 수 있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그런데 드고아 여인이 이 같은 말을 한 진정한 목적은 분명 압살롬의 범죄의 근원적 책임이 그 부모 곧 다윗에게 있음을 은근히 암시하려는 데 있을 것이다.
사무엘 하 14장 10절
왕이 이르되 누구든지 네게 말하는 자를 내게로 데려오라 그가 다시는 너를 건드리지도 못하리라 하니라
네게 말하는 자를 … 데려오라
이번 일로 인하여 드고아 여인을 기소(起訴)하려 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해를 가하려는 자가 있으면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 자신에게로 데려오라는 뜻이다(Wycliffe). 즉 지금 다윗은 국태민안(國泰民安)에 힘쓸 최고 통치자로서 어려움에 처한 과부를 기꺼이 보호해 주겠다는 굳은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Matthew Henry).
사무엘 하 14장 11절
여인이 이르되 청하건대 왕은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사 원수 갚는 자가 더 죽이지 못하게 하옵소서 내 아들을 죽일까 두렵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사 … 죽이지 못하게 하옵소서
다윗 왕과의 대화에서 세 번째로 드고아 여인이 말하는 장면이다(4-7, 9절). 여기서 이 여인은 다시 다윗 왕의 공정한 판단력을 약화시키고 그 감정에 호소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다. 즉, 드고아 여인은 여기서 하나님의 두 속성인 공의와 사랑 중 공의는 무시하고 사랑만을 강조함으로써 다윗으로 하여금 압살롬 문제에 있어서 공정한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Matthew Henry).
원수 갚는 자
히브리어로는 ‘고엘 하담’으로, 그 뜻은 ‘피의 보복자’(avenger of blood)이다. 민 35:19에서는 ‘피를 보복하는 자’로 번역되었는데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자의 가장 가까운 친족을 가리킨다. 율법에 의하면 이들은 억울하게 죽임 당한 친척을 위해 반드시 복수할 의무를 지니도록 되어 있다. 민 35:12 주석 참조.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머리카락 하나도 … 아니하리라
이와 같은 다윗 왕의 맹세는 하나님의 자비만을 생각하고 공의를 무시한 잘못된 맹세였다. 왜냐하면 다윗 왕은 드고아 여인과 군중들(7절)의 입장을 다 들어보고 공정하게 판결을 내려야 할 재판장인데도 오직 한쪽 편의 말만을 듣고 섣불리 맹세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판단 기준은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편향되기 쉬운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윗의 맹세는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 경솔한 맹세였다고 할 수 있다.
사무엘 하 14장 12절
여인이 이르되 청하건대 당신의 여종을 용납하여 한 말씀을 내 주 왕께 여쭙게 하옵소서 하니 그가 이르되 말하라 하니라
여인이 이르되 … 여쭙게 하옵소서
지금까지 얻어낸 다윗 왕의 맹세(8, 10, 11절)를 압살롬의 경우에 적용시키기 위한 드고아 여인의 교묘한 청원이다.
사무엘 하 14장 13절
여인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왕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대하여 이 같은 생각을 하셨나이까 이 말씀을 하심으로 왕께서 죄 있는 사람 같이 되심은 그 내쫓긴 자를 왕께서 집으로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어찌하여 … 하나님의 백성에게 대하여 이같은 생각을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은 이스라엘을 의미하며 ‘이 같은 생각’은 외국에 도피한 압살롬(13:37, 38)을 용서하지 않는 다윗 왕의 처사를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대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은 긍정적인 의미(toward)가 아닌 부정적 의미(against)를 지닌다(Keil). 따라서 본 절의 의미는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슬러 압살롬을 용납하지 아니하시나이까’가 된다. 즉 이 말은 다시 풀이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압살롬을 다윗 왕의 후계자로 인정하고 그의 귀환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왜 유독 왕께서만 압살롬의 죄를 용납하지 아니하나이까라는 의미이다.
이 말씀
지금까지 다윗 왕이 드고아 여인에게 맹세한 말(8, 10, 11절)을 가리킨다.
왕께서 죄 있는 사람 같이 되심은
여기서 ‘죄 있는 사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쉠’은 고범죄자(故犯罪者)를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부지중에 실수한 경범죄자(輕犯罪者)를 의미한다(레 4:13, 22, 27, 5:2, 3, 17). 따라서 본 절의 드고아 여인의 말은 다윗 왕이 압살롬을 돌아오지 못하게 조치하므로 말미암아 왕이 부지중에 백성들의 여론과 반대되는 가벼운 범죄 행위를 저지르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여인의 말은 적어도 서너 가지 점에서 이치에 맞지 않는다. 즉 (1) 자신의 비유(6, 7절)를 압살롬 사건(13:23-29)과 일치시켜 다윗을 정죄한 것은 적합하지 않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이 압살롬을 다윗의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다는 말 자체가 신빙성이 없다, (3) 다윗이 압살롬을 내쫓은 것이 아니라 암논을 죽인 후 압살롬 스스로가 도망쳤다.
그 내쫓긴 자
이는 그술에 도피해 있는 압살롬(13:37, 38)을 은연중 지칭하는 말이다. 즉 드고아 여인은 지금 압살롬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고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이 여인이 우회적으로 압살롬을 표현한 것은, 아마도 어떻게 해서든 사건의 진상을 덮어두고 다윗 왕의 약한 감정만을 움직여 압살롬에게 유리한 판결이 내려지도록 하기 위한 의도에서였을 것이다(Ewald, Lange).
사무엘 하 14장 14절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담지 못함 같을 것이오나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내쫓긴 자가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시나이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 … 같을 것이오나
본 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하여서는 학자들 간에 대체로 다음 두 가지 의견으로 나누어지고 있다. (1) 이 말은 암논의 죽음(13:28, 29)과 관련된 말이라는 견해이다(Thenius). 즉 본 절은, 이미 한 번 죽은 암논은 쏟아버린 물처럼 다시는 회복될 수 없다는 사실을 드고아 여인이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2) 그보다는 죽음의 일반적인 특성을 보여 주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견해이다(Lange, Keil, Pulpit commentary). 왜냐하면 여기에 나오는 ‘죽으리니’란 동사는 미완료형으로 아직 완료되지 아니한 사실, 곧 일반적인 진리를 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본 절은 첫째, 죽음이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것이며, 둘째, 죽음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종말적인 일이라는 보편적인 진리를 말해 주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이렇게 볼 때 여기서 드고아 여인이 의도하는 바가 분명히 드러난다. 즉 이 여인은 본 절에서 압살롬도 인간이므로 반드시 죽을 것이며, 일단 그가 죽으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므로 압살롬이 죽기 전에 그를 용서하라고 다윗 왕에게 넌지시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견해는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과도 문맥상 잘 어울린다.
하나님은 … 버린 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시나이다
드고아 여인이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처사를 언급한 것으로, 앞 구절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즉,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나 하나님은 그러한 죄인을 용서하시며 사랑하신다는 것이 곧 이 여인의 주장이다. 그런데 이러한 말은 틀림없이 다윗으로 하여금 죽을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사죄의 은총을 받은 바 있었던 자신의 과거(12:13)를 기억나게 하였을 것이다(Lange, Matthew Henry). 이와 같은 드고아 여인의 말은 단편적으로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를 보여 주는 매우 고상한 말이기는 하지만, 압살롬에게 적용하기에는 자연스럽지 못하다. 왜냐하면 다윗 왕의 경우와는 달리 압살롬의 경우에는 죄를 범한 당사자가 회개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드고아 여인 역시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다만 요압의 분부를 따라(1-3절) 이러한 말을 하였는데, 이는 다분히 정치적인 목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3절 주석 참조.
사무엘 하 14장 15절
이제 내가 와서 내 주 왕께 이 말씀을 여쭙는 것은 백성들이 나를 두렵게 하므로 당신의 여종이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왕께 여쭈오면 혹시 종이 청하는 것을 왕께서 시행하실 것이라
15절-17절의 개요
드고아 여인이 자기가 왕께 찾아온 동기가 순수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부분이다. 즉, 이 여인은 단지 자기 자신의 괴로운 문제 때문에 다윗에게 찾아와 호소한 것이지 다른 속셈이 있어서 온 것이 아니라는 내용의 말을 하고 있다. 그 근거로서 여인은 (1) 자신이 백성들로부터 살인한 아들을 처벌하라는 강요를 받고 있었으며(15절), (2) 자신이 다윗의 지혜와 수완을 크게 믿고 있었다는 사실(16, 17절)을 말한다. 그러나 이처럼 드고아 여인이 자기가 다윗에게 나아온 동기에 대하여 불필요하게 변명하고 있는 것은, 앞에서 압살롬의 사면(赦免)을 우회적으로 요청한(13, 14절) 자신의 의도가 지나치게 다윗 왕에게 노출되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음에 틀림없다.
백성들이 나를 두렵게 하므로
즉 동생을 죽인 형(6절)을 율법에 따라 벌하지 아니하고 감싼 데 대하여, 백성들이 자기를 핍박하며 살인자를 내어 놓으라고 위협했다는(7절) 드고아 여인의 진술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지금껏 이야기한 비유(5-7절)를 실제의 일인 양 가장하여 다윗을 속이려 든 여인의 강변(强辯) 일뿐이다.
사무엘 하 14장 16절
왕께서 들으시고 나와 내 아들을 함께 하나님의 기업에서 끊을 자의 손으로부터 주의 종을 구원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나님의 기업
‘하나님의 기업’이란 본래 이스라엘 민족(Keil)이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준 약속의 땅 가나안(Hertzberg)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 이 말은 다윗 왕과 그의 왕조를 은연중 가리키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Hertzberg). 즉, 드고아 여인은 자기와 자기 아들이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는 현상을 은연 중 다윗의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는 불행한 일에다 빗대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드고아 여인은 자기가 다윗을 찾아온 동기를 변명하고 있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참된 의도를 은밀히 시사하고 있다.
사무엘 하 14장 17절
당신의 여종이 또 스스로 말하기를 내 주 왕의 말씀이 나의 위로가 되기를 원한다 하였사오니 이는 내 주 왕께서 하나님의 사자 같이 선과 악을 분간하심이니이다 원하건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과 같이 계시옵소서
내 주 왕께서 하나님의 사자 같이
여기서 ‘하나님의 사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말레 아크 엘로힘’은 하나님의 일을 수종 드는 ‘천사’를 의미한다(창 28:12, 31:11, 32:1, 3, 민 22:24, 삿 2:1, 4, 5:23). 따라서 본 절은 드고아 여인이 다윗 왕을, 신적 권위를 부여받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감당하는 천사에다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다윗 왕은 천사도 아니고 천사와 같은 지혜와 공정한 능력도 없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는 드고아 여인이 어떻게 해서든 다윗 왕의 이성(理性)을 흐리게 하기 위한 아첨의 말이었다. 사실 아첨은 듣는 이의 판단력을 굽게 만드는 독약과 같은 효능을 지니고 있다(잠 26:28, 29:5, 행 12:21-23).
사무엘 하 14장 18절
왕이 그 여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바라노니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내게 숨기지 말라 여인이 이르되 내 주 왕은 말씀하옵소서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내게 숨기지 말라
드고아 여인의 불필요한 변명과 아첨을 듣고 난 다윗이 이제야 여인의 진정한 의도를 눈치챘음을 보여준다.
사무엘 하 14장 19절
왕이 이르되 이 모든 일에 요압이 너와 함께 하였느냐 하니 여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내 주 왕의 말씀을 좌로나 우로나 옮길 자가 없으리이다 왕의 종 요압이 내게 명령하였고 그가 이 모든 말을 왕의 여종의 입에 넣어 주었사오니
요압이 너와 함께 하였느냐
다윗 왕이 드고아 여인에게 이와 같이 물은 까닭은 아마 한갓 여인으로서는 이처럼 엄청난 일을 꾸미기 힘들 것이라고 판단했거나, 아니면 다윗이 여인의 말을 듣는 중 그 배후에 요압의 술수가 있으리라고 직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요압은 일찍이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회주의자인 동시에 지략가였으므로, 다윗 왕은 이번에도 그가 자기의 권세를 공고히 하기 위해 술수를 부렸으리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3:27, 11:16).
왕의 말씀을 … 옮길 자가 없으리이다
다윗 왕의 말이 조금도 틀림이 없이 정곡을 찔렀다는 뜻이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드고아 여인의 이와 같은 말은 다윗 왕의 지혜와 현명함에 대한 지나친 칭찬으로 이는 자기에게 있게 될지도 모르는 다윗 왕의 진노를 조금이라도 진정시켜 보려 한 아부성 발언이었다.
사무엘 하 14장 20절
이는 왕의 종 요압이 이 일의 형편을 바꾸려 하여 이렇게 함이니이다 내 주 왕의 지혜는 하나님의 사자의 지혜와 같아서 땅에 있는 일을 다 아시나이다 하니라
이 일이 형편을 바꾸려 하여
‘이 일의 형편’이란 압살롬이 그술 땅으로 도망쳐 그곳에 있는지 삼 년째이며(13:37, 38) 다윗은 아직도 압살롬을 사면(赦免)하려는 기색이 보이지 않은 현재의 상황을 가리킨다.
땅에 있는 일을 다 아시나이다
여기서 ‘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레츠’는 온 세상, 또는 세계를 의미한다(창 9:13, 10:8, 25, 신 4:26, 대하 36:23, 스 1:2, 욥 1:8, 2:3). 따라서 드고아 여인의 이 말은 다윗 왕의 조그마한 통찰력을 하나님의 전지한 능력에다 비유한 엄청난 과장(誇張)이었다. 즉 드고아 여인은 17, 19절에 이어 계속해서 아첨을 늘어놓음으로써 다윗의 환심을 사려 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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