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하 13장 1절부터 22절까지의 말씀은, 다윗이 이룬 태평성대에 그의 아들인 암논이 저지른 근친상간의 죄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복누이인 다말은 암논에게 강간을 당하고 다말의 친오빠인 압살롬은 이 사실을 마음에 두고 복수의 날을 기다립니다. 본문을 통독하고 주석과 해설을 참조하여 큐티를 하였습니다.
사무엘 하 13장 1절-22절, 주석과 해설 정리
사무엘 하 13장 1절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다른 아들 암논이 그를 사랑하나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그 후에’란 용어는 구약에서 대개 다음 두 가지 용례(用例)로 사용되었다. (1) 시간적인 전후 관계를 연결하는 접속사(삼상 24:8, 에 2:1). (2) 시간적인 전후 관계와는 상관없이 단순히 상이한 두 내용을 서로 연결시켜 주는 접속사(2:1, 8:1, 10:1). 8:1 주석 참조. 그런데 여기서 이 용어는 첫 번째 경우로 사용되었다. 즉 이는 본 장에 기록된 다윗가의 재난이 나단 선지자의 예언(12:10-12)대로 하나님의 보응의 결과로 나타난 사건임을 보여 주기 위한 연대기적 접속사이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 … 다말이라
이들은 다윗이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에게서 얻은 자녀들이다(3:3). 당시 그술은 이스라엘 바로 북쪽에 위치한 아람 소국이었는데 다윗은 이 이방 나라와의 화친을 위해 정략결혼을 하였다. 3:3 주석 참조.
암논
다윗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에게서 얻은 장자이다(3:2). 따라서 다말은 그의 이복(異腹) 누이동생이 된다. 5:13-16 주석 참조.
사무엘 하 13장 2절
그는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알고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 때문에 울화로 말미암아 병이 되니라
그는 처녀이므로
여기서 ‘처녀’에 해당되는 원어 ‘베투라’는 ‘동정녀’(virgin)란 뜻으로 단순히 시집가지 아니한 여자가 아닌 지금껏 남자를 가까이하지 아니한 정숙한 여인을 의미한다(Lange, Keil). 즉, 다말은 순결을 소중히 여기는 품위 있는 여인이었으므로 암논이 함부로 접근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한편 본 절에서 보듯 다말이 암논에게 연정을 품게 할 정도로 성숙한 것을 보아 적어도 이때 다말은 15세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말은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낳은 딸이니(대상 3:5-9) 본 장의 시대적 배경은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통치한 지 최소한 15년은 경과한 때임을 알 수 있다(5:1-5).
울화로 말미암아 병이 되니라
여기서 ‘울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차르’는 ‘괴로워하다, 고민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본 절은 암논이 다말에 대한 연민의 정 때문에 상사병(相思病)에 걸렸음을 알 수 있다.
사무엘 하 13장 3절
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으니 그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 심히 간교한 자라
다윗의 형 시므아
그는 이새의 셋째 아들이며(대상 2:13) 삼마(Shammah)라고도 불린다(삼상 16:9, 17:13).
심히 간교한 자라
여기서 ‘간교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쉬 하캄’은 좋은 의미에서 ‘지혜로운 자, 능숙한 자’를, 그리고 나쁜 의미에서 ‘교활한 자’를 가리킨다. 그런데 요나답은 자기의 지혜로 암논의 부도덕한 욕망을 충족시켜 주었으므로 악한 지혜의 소유자, 곧 교활한 자였다. 어쨌든 본 장에서 그는 사람의 마음과 사건의 정황(情況)을 정확히 판단할 줄 아는 매우 뛰어난 인물로 묘사되어 있으니(5, 32절) 그 지혜가 아깝지 않을 수 없다.
사무엘 하 13장 4절
그가 암논에게 이르되 왕자여 당신은 어찌하여 나날이 이렇게 파리하여 가느냐 내게 말해 주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암논이 말하되 내가 아우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사랑함이니라 하니라
내가 … 다말을 사랑함이니라
여기서 ‘사랑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아하브’는 ‘성적(性的)으로 관심을 갖는 것’ 또한 ‘사랑을 느끼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암논은 다말의 전인격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육체만을 사랑했었음을 알 수 있다. 암논의 이러한 충동적이고 쾌락적인 성적 욕망은 그가 다말을 범한 후 오히려 그녀를 싫어한 사실(14, 15절)에서 잘 드러난다.
사무엘 하 13장 5절
요나답이 그에게 이르되 침상에 누워 병든 체하다가 네 아버지가 너를 보러 오거든 너는 그에게 말하기를 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게 떡을 먹이되 내가 보는 데에서 떡을 차려 그의 손으로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라 하니
네 아버지가 너를 보러 오거든
‘보러 오거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아’는 여기서 단순히 ‘우연히 보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가지고 방문하여 보다’, 또는 ‘병의 진행 정도를 진찰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출 1:16, 레 13:3, 6, 8, 56, 민 13:18, 왕하 8:29, 시 41:7). 따라서 요나답의 아와 같은 말은 다윗 왕이 암논의 병을 염려하여 병문안 올 것을 예상하고서 한 말임을 알 수 있다(Lange).
내 누이 다말이 …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라
이는 자식에 대한 다윗 왕의 애정을 이용하여 암논의 욕망을 이루게 하려는 요나답의 간교한 계략이다. 한편 이와 같이 요나답이 암논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그를 도와준 까닭은 아마 암논이 다윗 왕의 장자로서(3:2) 왕위 계승의 서열 제1위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Smith, Leon Wood). 즉, 요나답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차기 왕좌에 가장 가까웠던 암논을 가까이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추론은 왕위 계승의 서열상 장자가 우선이라는 당시 고대 사회의 통념으로 볼 때 매우 일리가 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앞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 왕의 계승자로 이미 솔로몬을 지목하셨다. 12:25 주석 참조.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윗이 당시 이러한 사실을 공식 발표하지 않은 것은 아마 왕자들 간의 실권(實權) 다툼(왕상 1:13)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무엘 하 13장 6절
암논이 곧 누워 병든 체하다가 왕이 와서 그를 볼 때에 암논이 왕께 아뢰되 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가 보는 데에서 과자 두어 개를 만들어 그의 손으로 내게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니
과자 두어 개
여기서 ‘과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비보트’는 심장(heart)을 의미하는 ‘레바브’에서 파생된 말이다. 따라서 학자들은 이 과자가 심장을 강하게 해주는 일종의 건강식이거나 아니면 심장 모양의 둥근 케이크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Keil, Lange).
사무엘 하 13장 7절
다윗이 사람을 그의 집으로 보내 다말에게 이르되 이제 네 오라버니 암논의 집으로 가서 그를 위하여 음식을 차리라 한지라
다윗이 … 이르되
암논의 범죄에 다윗이 개입되어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다윗은 후에 발생되는 압살롬의 범죄 때에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개입되었다(23-28절). 이러한 사실은 다윗 가문의 모든 재난이 다윗 자신의 범죄(11장)로 말미암아 발생하고 있음을 다윗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고 볼 수 있다. 즉 이 같은 사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다윗으로 하여금 이전과 같은 죄악을 범치 않도록 경책하고 계시는 것이다.
가서 … 음식을 차리라
히브리 관습에 따르면 여인들은 음식 만드는 일에 초청되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Jamison). 비록 암논의 요구(6절)가 좀 부자연스럽긴 했지만 다윗이 그 요구를 받아들였던 것도 그 같은 관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무엘 하 13장 8절
다말이 그 오라버니 암논의 집에 이르매 그가 누웠더라 다말이 밀가루를 가지고 반죽하여 그가 보는 데서 과자를 만들고 그 과자를 굽고
다말이 그 오라버니 암논의 집에 이르매
본 절은 당시 왕의 자녀들이 그들의 어머니(3:2-5, 5:13-16, 대상 3:1-9)와 함께 각기 다른 거처에서 생활하였으며, 또한 장성한 아들들은 각기 독립된 주택에서 생활하였음을 보여 준다(Lange, Wycliffe, Keil & Delitzsch Commentary).
그가 보는 데서 과자를 만들고
히브리인들은 실내에 있는 화로(火爐)나 벽난로에서 요리를 하였다. 즉, 그들의 가옥 구조는 부엌과 거실이 거의 구별되지 않았다. 따라서 다말은 암논이 지켜보는 가운데 요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사무엘 하 13장 9절
그 냄비를 가져다가 그 앞에 쏟아 놓아도 암논이 먹기를 거절하고 암논이 이르되 모든 사람을 내게서 나가게 하라 하니 다 그를 떠나 나가니라
암논이 먹기를 거절하고 … 나가게 하라 하니
이처럼 암논이 다말의 요리를 거절한 것은 병이 악화되기나 한 듯이 방문객들에게 보이기 위함이었다. 즉 이렇게 하여 그는 다말 이외에 모든 사람들을 밖으로 나가도록 한 자신의 행동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도록 꾸몄던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암논의 꾸밈은 모략가인 요나답의 계략(5절)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Lange).
사무엘 하 13장 10절
암논이 다말에게 이르되 음식물을 가지고 침실로 들어오라 내가 네 손에서 먹으리라 하니 다말이 자기가 만든 과자를 가지고 침실에 들어가 그의 오라버니 암논에게 이르러
다말이 … 침실에 들어가
다말이 미처 암논의 흑심(黑心)을 눈치채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즉 그녀는 암논이 자신을 강간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어떻게든 병든 암논의 마음을 위로해 주기 위해 구운 과자를 들고 기꺼이 암논의 침실에까지 들어간 것이다(Matthew Henry’s Commentary).
사무엘 하 13장 11절
그에게 먹이려고 가까이 가지고 갈 때에 암논이 그를 붙잡고 그에게 이르되 나의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 하는지라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
암논이 하나님의 율법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간음(레 18:9)을 요구하고 있는 장면이다. 암논은 인간의 눈을 피하기만 한다면(9절) 자신의 죄악이 숨겨질 것으로 생각했음이 분명하다(욥 24:15). 그러나 다윗의 경우처럼 이번에도 하나님께서는 암논의 극악한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계셨으며 끝내 그를 징계하셨다(29절). 이처럼 인간의 범죄는 반드시 자신의 파멸을 가져오게 되어 있다(갈 5:19-21). 따라서 우리가 각종 탐심과 욕정을 억제함으로 범죄치 않기 위해서는 매사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겸비한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시 119:9, 벧 4:2).
사무엘 하 13장 12절
그가 그에게 대답하되 아니라 내 오라버니여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하지 못할 것이니 이 어리석은 일을 행하지 말라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하지 못할 것이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에 기초해 건설된 신정 국가였다(출 19:5, 6). 따라서 율법에 의거, 근친상간을 범한 자는 수간(獸姦)하는 자와 남색(男色)하는 자와 더불어 이스라엘 사회 내에서 제거되어야 했다(레 18:9, 20:17, 신 27:22).
어리석은 일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발라’는 히위 족속인 세겜이 야곱의 딸 디나를 겁탈한 행위를 가리킬 때 사용된 것과 같은 말이다(창 34:7). 이 말은 구약에서 대개 다음 두 가지를 의미하였다. (1)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짐승 같은 행위를 뜻한다. (2) 주변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 악독한 일, 그중에서도 특히 음행과 관련된 악한 일을 의미한다(수 7:15, 삿 19:23, 24, 20:6, 10, 삼상 25:25, 사 9:17, 32:6, 렘 29:23).
사무엘 하 13장 13절
내가 이 수치를 지니고 어디로 가겠느냐 너도 이스라엘에서 어리석은 자 중의 하나가 되리라 이제 청하건대 왕께 말하라 그가 나를 네게 주기를 거절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되
어리석은 자
이는 단지 지혜가 부족한 자가 아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므로 결국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자를 가리킨다(시 14:1).
왕께 말하라 … 거절하지 아니하시리라
다말의 이러한 말은 표면적으로 이해할 때 틀린 말이다. 왜냐하면 다말은 왕께 말씀만 드리면 근친 간(近親間)이라도 결혼이 가능한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율법에는 엄연히 근친상간과 근친혼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레 18:6-18). 그런데 이에 대해 혹자는 근친상간에 대한 율법의 조항이 남매간의 결혼을 완전히 금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Thenius).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율법에 명시된 분명한 사실을 근거 없이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 그뿐 아니라 유대인들의 탈무드는 다말이 다윗의 친딸이 아닌 누군가의 사생아였기 때문에 암논과의 혼인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Wycliffe). 그러나 성경은 다말이 다윗의 친딸임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으니(1절, 대상 3:9) 이 역시 그릇된 주장이다. 따라서 남매간의 결혼이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다말이 당시의 위급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이같이 둘러댄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Keil, Lange, Payne, Josephus, Clericus).
사무엘 하 13장 14절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그와 동침하니라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 동침하니라
다말의 온갖 설득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암논은 기어코 자신의 욕정을 채우고 말았다. 이는 곧 그 아비 다윗이 이성을 잃어버린 채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것과 같은 경우이다(11:2-4). 하지만 이는 곧 하루살이가 타오르는 불을 보고서 불속으로 뛰어듦과 같다. 즉 하루살이는 불빛에 미혹되어 그 속으로 뛰어들지만 맹렬하게 타오른 모닥불은 하루살이를 태워버리고 만다. 성경은 무릇 다른 죄악보다 온갖 정욕의 죄를 보다 엄히 경계하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 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기 때문이다(고전 6:18).
사무엘 하 13장 15절
그리하고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암논이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하니
심히 미워하니 … 사랑보다 더한지라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병이 날 정도로(2절) 사랑했던 자를 이제 성적 욕구를 채우고 난 후에는 도리어 심히 미워하는 암논의 심리현상은 변태 성욕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즉 상대방의 인격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없이 하등 동물적인 욕정에만 사로잡혀 있을 경우, 일단 육체적 욕망이 충족되고 나면 심한 허탈감과 죄책감, 상대방에 대한 혐오감에 사로잡히는 것이 사람의 일반적 심리 현상인 것이다.
사무엘 하 13장 16절
다말이 그에게 이르되 옳지 아니하다 나를 쫓아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 하되 암논이 그를 듣지 아니하고
옳지 아니하다 … 그 악보다 더하다
암논이 다말을 자기 집에서 쫓아내는 것은 방금 자신에게 추행을 당한 다말의 수치심을 더욱 자극하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러한 암논의 행위는 자기 때문에 불행한 생(生)을 맞이하게 된 다말에 대하여 약간의 동정심도 베풀지 아니한 잔악한 행위임에 분명하다. 따라서 다말은 자기를 쫓아보내는 암논의 행위가 이전의 그의 추행보다 더 악하다고 말하고 있다.
사무엘 하 13장 17절
그가 부리는 종을 불러 이르되 이 계집을 내게서 이제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 하니
문빗장을 지르라
암논의 이러한 행위는 진실로 자신의 양심에 빗장을 지르는 것이자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다는 하나님의 심판의 문빗장을 스스로 지르는 짓이 아닐 수 없다. 만일 그가 다말에게 조금이라도 정신을 가다듬고 수치심을 억누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만이라도 주었더라면 다말과 하나님으로부터 일말의 긍휼을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암논은 스스로를 차꼬 채우듯 보다 철저히 악으로 일관하였으니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형벌을 피할 수 없었다(38, 29절).
사무엘 하 13장 18절
암논의 하인이 그를 끌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니라 다말이 채색옷을 입었으니 출가하지 아니한 공주는 이런 옷으로 단장하는 법이라
채색옷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케토네트 파심’은 ‘소매가 달린 긴 겉옷’이란 뜻이다. 아마도 이는 공주와 같은 귀족 신분이 입는 소매가 길고 아름답게 장식된 나들이 옷을 의미할 것이다. 창 37:3 주석 참조.
사무엘 하 13장 19절
다말이 재를 자기의 머리에 덮어쓰고 그의 채색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가서 크게 울부짖으니라
재를 자기의 머리에 덮어쓰고
이는 자신의 수치스럽고도 비참한 현실에 대한 슬픔과 고뇌를 드러내는 행동이다(삼상 4:12, 왕하 5:8). 1:2 주석 참조. 아마도 다말은 조금 전 과자를 구울 때 사용한 화로나 벽난로에서 취한 재(8절)를 머리에 뒤집어썼을 것이다(Pulpit Commentary).
채색옷을 찢고
옷을 찢는 행위 역시 금식이나 굵은 베옷을 입는 행위(왕상 21:27, 에 4:3, 시 35:13)와 더불어 참을 수 없는 자신의 슬픔을 나타내던 히브리인들의 한 표현법이었다. 1:2 주석 참조.
손을 머리 위에 얹고
머리는 그 사람의 명예를 상징하는 것이다. 창 40:13 주석 참조. 따라서 다말이 손을 머리 위에 얹은 것은 자신의 머리에 수치스러운 것이 임한 것을 슬퍼하며 애통하는 표현이었다(렘 2:37). 아마도 다말은 이러한 행위로써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당한 억울함(11-14절)을 표현하고 아울러 자신의 순수함과 결백함을 나타내고자 하였을 것이다(Lange).
사무엘 하 13장 20절
그의 오라버니 압살롬이 그에게 이르되 네 오라버니 암논이 너와 함께 있었느냐 그러나 그는 네 오라버니이니 누이야 지금은 잠잠히 있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라 하니라 이에 다말이 그의 오라버니 압살롬의 집에 있어 처량하게 지내니라
암논이 너와 함께 있었느냐
매우 슬피 울며 자신의 수치를 드러내고 있는 다말의 모습을 본 압살롬이 암논의 추행을 짐작하고선 사실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완곡하게 묻는 말(euphemism)이다. 여기서 즉, ‘ … 너와 함께 있었느냐’하는 물음은 남녀의 동침 여부를 우회적으로 묻는 말인 것이다(창 39:10). 한편, 본 절의 원문에는 ‘암논’이 ‘아미논’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에 대해 혹자는 필사자의 잘못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Pulpit Commentary), 또 다른 사람은 ‘아미논’이 ‘암논’에 대한 경멸어(輕蔑語)라고도 주장한다(Lange, Thenius). 그런데 사건의 흐름상 이 두 견해 중 후자의 주장이 비교적 설득력 있게 보인다.
지금은 잠잠히 있고
이 같은 압살롬의 말은 다음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1) 아버지 다윗이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두고 보겠다는 의미이다(21절). (2) 암논에게 복수할 좋은 묘책이 떠오를 때까지는 경거망동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사실 암논에게 일언반구(一言半句)도 말하지 않은 채 2년 동안 기회를 노린 점을 볼 때 압살롬의 복수심은 대단했었음을 알 수 있다(22-29절).
이것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라
당시 일부다처제가 성행하던 세태 속에서 오라버니는 자기 누이를 보호할 의무가 있었다(창 34:31). 따라서 압살롬은 암논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고 자기 누이를 진정시킨 것이다(Pulpit Commentary).
처량하게 지내니라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멤’은 ‘황폐한, 다 망가진’이란 뜻을 가진다. 따라서 이 말은 마치 폐인(廢人)처럼 이제 괴로운 나날만을 보내고 있는 다말의 비참한 삶을 잘 드러내 준다.
사무엘 하 13장 21절
다윗 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
다윗 왕이 … 심히 노하니라
이처럼 다윗 왕은 암논의 범죄 소식을 듣고 일시적으로 크게 노하기만 했을 뿐 율법에 따라 암논에게 형벌을 내리지 않았다(레 20:17). 그 이유에 대하여 70인 역(LXX)은 “암논이 장자인 고로 다윗이 그를 사랑하여 암논의 마음을 괴롭게 하지 않았다”라고 보충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외에도 또 다른 이유를 댈 수 있다. 그것은 곧 다윗 왕 자신이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이미 지은 자로서(11:4) 자기 아들의 죄를 심판할 자격을 이미 상실했기 때문이란 점이다(Wycliffe, Pulpit Commentary). 그리고 또 자식에 대한 다윗 왕의 약한 마음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Lange, Keil). 아무튼 이상의 점에 비추어 볼 때 다윗은 인간적인 면에서 좋은 아버지였을지 모르나 하나님 앞에서는 부모의 본분을 다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잠 23:13, 14, 엡 6:4). 때문에 이러한 다윗의 잘못은 결국 엄청난 가정의 비극을 초래하였다. 즉 다윗의 우유 부단한 처신에 불만을 품은 압살롬은 결국 암논을 살해하고(23-29절) 더 나아가 다윗에게 반역한 것이다(15장).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인 가정교육의 주안점은 자녀의 영혼을 바로 세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자녀가 잘못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준엄하게 징계하여 그로 하여금 바른 삶을 살게 하는 것이 곧 부모의 참된 역할이다(딤후 3:16, 17).
사무엘 하 13장 22절
압살롬은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그를 미워하여 암논에 대하여 잘잘못을 압살롬이 말하지 아니하니라
잘잘못을 압살롬이 말하지 아니하니라
누이동생 다말의 일로 인해 암논을 미워하게 된 압살롬이 그 일에 대하여 암논에게 한 마디도 따지거나 변론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압살롬이 속으로 암논과 절교(絶交)를 선언하고 또한 잔인한 복수극을 계획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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