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하 11장 14절부터 21절은, 다윗이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하여 우리아를 살해하려고 계획을 세웁니다. 요압에게 전령을 보내어 우리아의 죽음까지 다윗은 확인합니다. 본문을 개역개정 성경을 통독하고 주석 및 해설을 참조하여 본문을 이해하였습니다.
사무엘 하 11장 14절-21절, 주석 및 해설 정리
사무엘 하 11장 14절
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니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우리아는 자신의 죽음을 재촉하는 편지(15절)를 자신이 배달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바로 이 같은 사실을 이용하여 우리아를 사지로 몰아넣었다. 이는 사전에 치밀하게 계산하지 아니하고서는 도저히 생각해 낼 수 없는 교묘함이었다. 따라서 바로 여기에 다윗의 배가(倍加)된 가증스러움과 사악함이 담겨 있는 것이다(Matthew Henry’s Commentary).
사무엘 하 11장 15절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
너희가 우리아를 … 죽게 하라
우리아는 다윗의 37인 용사 중 한 사람이었다(23:39). 따라서 그가 일단 싸움에 임하면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윗은 바로 이런 점을 이용하여 우리아를 전쟁의 선봉장이 되게 하여 전사하도록 꾀하였다. 아무튼 다윗은 일단 우리아를 제거하기만 하면 자신의 부정행위(4절)가 영원히 감추어지고, 또한 밧세바까지도 자신의 아내로 삼을 수 있을 것(27절)이라는 생각 하에 이 같은 죄악을 저질렀다(Matthew Henry’s Commentary).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죄악을 반드시 드러내시므로(합 1:13) 다윗의 죄악 역시 결국 드러나고 만다(12:1-23)!
사무엘 하 11장 16절
요압이 그 성을 살펴 용사들이 있는 것을 아는 그 곳에 우리아를 두니
요압이 그 성을 살펴
여기서 ‘살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마르’는 본래 ‘방어하다, 경계하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혹자는 이를 ‘성을 포위하여 경계하다’라는 의미로 해석한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이 말이 이러한 뜻으로 사용된 용례는 거의 없다. 오히려 이 용어는 대개 ‘관찰하다, 유의하여 감시하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삼상 1:12, 시 59:10, 사 42:20, 창 2:15). 따라서 이 말은 다윗의 분부를 받은 요압(15절)이 우리아를 적군의 손에 죽게 하기 위해 사전에 그 적절한 장소를 물색한 것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Lange).
용사들이 있는 것을 아는 그 곳에
여기서 ‘용사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네쉐-하일’은 ‘힘센 남자들’이란 의미이다. 이는 지금 랍바 성 내에서 이스라엘의 공격을 방어하고 있는 거민들과는 구별되는 전쟁에 능한 용사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랍바 성 안에서 이스라엘을 방어하고 있는 자들이 모두 다 암몬의 특별한 용사들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아마도 추측컨대 전략상 성의 견고한 곳에는 일반 거민들이, 성의 취약한 곳에는 암몬의 용사들이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한편, 여기서 ‘아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다’는 사변적(思辨的)인 지식이 아니라 경험적인 지식을 의미하는 말이다(출 14:4, 삿 15:11, 삼상 29:9).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통하여, 그동안 적의 동태를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던 요압이 가장 위험한 지역에 우리아를 배치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사무엘 하 11장 17절
그 성 사람들이 나와서 요압과 더불어 싸울 때에 다윗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엎드러지고 헷 사람 우리아도 죽으니라
다윗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엎드러지고
여기서 ‘다윗의 부하’란 다윗의 군사 고문들을 의미한다(1절 주석 참조). 따라서 이들의 죽음은 이스라엘 군에게 막대한 손실이었다. 즉 우리아 한 사람을 죽이려던 다윗은 자신의 불의의 계략으로 말미암아 결국 유능한 부하들을 잃고 만 것이다.
헷 사람 우리아도 죽으니라
요압의 맹목적인 순종으로 말미암은 비극이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요압의 비정함을 볼 수 있다. 즉, 우리아는 다윗의 서른일곱 용사 중 한 명이며 요압의 직속 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요압은 우리아가 왜 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이 오직 권력에 아부하는 자세로 다윗의 명령만을 준행했다. 만일 요압에게 진정한 충성심과 부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그는 일의 자초지종을 알아본 후 최소한 아무런 죄 없는 우리아를 위해 다윗에게 탄원 정도는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요압은 하나님의 공의보다는 자기의 출세를 위해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는 기회주의적 행동을 하였으며(10:12),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는 현실 타협적 행동을 하였다(Wycliffe, Matthew Henry).
사무엘 하 11장 18절
요압이 사람을 보내 그 전쟁의 모든 일을 다윗에게 보고할새
사무엘 하 11장 19절
그 전령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전쟁의 모든 일을 네가 왕께 보고하기를 마친 후에
그 전령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요압은 다윗에게 전쟁의 결과를 보고할 전령을 불러 전에 없던 특별한 명령을 하였다. 그 이유는 이번 전쟁에서 예상외로 많은 손실을 보았기 때문이다(17절). 즉 이로 인해 왕의 문책을 두려워한 요압(20절)은 이번의 패배를 무마시키는 방편으로 우리아의 죽음을 보고하도록 명령하고 있다(21절).
사무엘 하 11장 20절
혹시 왕이 노하여 네게 말씀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에 그처럼 가까이 가서 싸웠느냐 그들이 성 위에서 쏠 줄을 알지 못하였느냐
사무엘 하 11장 21절
여룹베셋의 아들 아비멜렉을 쳐죽인 자가 누구냐 여인 하나가 성에서 맷돌 위짝을 그 위에 던지매 그가 데벳스에서 죽지 아니하였느냐 어찌하여 성에 가까이 갔더냐 하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하라
여룹베셋
이는 기드온(Gideon)의 별명이다. 본래 기드온의 별명은 여룹바알이었으나(삿 8:35), 후대에 ‘바알’이란 명칭이 이방신의 이름이라는 이유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미움을 받아 그것이 베셋으로 바뀌어진 것이다.
아비멜렉
기드온이 세겜의 첩을 통해 낳은 아들이다(삿 8:31). 그는 부친의 사후(死後) 자기 형제 70인을 모두 죽이고 므낫세 족속에 대한 모든 통치권을 장악하였다. 이에 반발한 세겜 사람들은 ‘가알’을 지도자로 하여 아비멜렉을 대항하였으나, 아비멜렉은 오히려 그들을 물리치고 성을 헐며 세겜 망대에 있는 사람 천 명을 불살라 죽였다(삿 9:46-49). 그리고 이러한 여파를 몰아 아비멜렉은 데메스마저 치려 하였는데, 그때 도리어 한 여인이 망대 위에서 던진 맷돌에 맞아 죽었다(삿 9:50-57). 그러므로 아비멜렉의 이와 같은 역사는 전쟁에 능한 다윗 왕과 요압 이외에도 많은 군지휘관들에게 전쟁에 있어서 중요한 한 가지 전술을 깨우쳐 주었을 것이다. 그것은 곧 수세(守勢)에 몰린 적의 성에 가까이 가는 것은 우발적인 죽음을 초래하기 쉬운 위험스러운 일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군대 내에서도 이러한 역사는 다윗뿐만 아니라 많은 지휘관들에게도 널리 읽히고 알려졌을 것이다(Lange).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에 익숙해 있던 요압이 암몬의 랍바 성 근처에서 이스라엘의 귀중한 인재들을 많이 잃었다고 하는 사실은 다윗 왕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왕의 진노가 있을 것을 예상한 요압은 전령에게 보고 내용을 특별히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아비멜렉의 역사를 요압이 언급한 사실에 대해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서로 다른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즉 (1) 구전(口傳)으로 내려온 사사기의 역사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졌을 것이라는 견해(Lange)와 (2) 아마도 사사기가 그 당시에 이미 기록되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Pulpit Commentary). 그런데 사사기에 ‘여부스족이 아직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삿 1:21), 사사기는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여부스족을 몰아내기(5:6-9) 이전에 기록되었음이 확실하다. 다라서 아비멜렉의 역사는 그 당시 이미 성문화(成文化)된 사사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후자의 견해가 더 타당하다.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이는 성 가까이에서 많은 인재를 잃은 요압(17절)이 자기의 실수를 무마시키기 위한 자구책(自救策)이었다. 즉, 이 말은 이번의 실수가 다윗 왕의 명령(15절)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도저히 피할 수 없었던 필연적인 불상사(不祥事)였다는 요압의 그럴듯한 해명이었다. 뿐만 아니라 사실상으로는 요압은 병법에 능한 자였으나 우리아를 죽이기 위해 성 밑 가까이에 군대를 투입하였던 것이다(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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