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석 보며 성경 읽기/10 사무엘 하

사무엘 하 11장 6절-13절, 주석과 해설 정리

사무엘 하 11장 6절부터 13절까지의 말씀은, 밧세바와 간음한 다윗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꼼수를 쓰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밧세바가 임신하자 전쟁 중에 있던 우리아를 예루살렘으로 불러오고 억지로 밧세바와 동침하도록 명령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본문을 개역개정 성경으로 통독하고 주석과 해설을 참조하였습니다.

 

사무엘 하 11장 6절-13절, 주석과 해설 정리
사무엘 하 11장 6절-13절, 주석과 해설 정리

 

 

사무엘 하 11장 6절-13절, 주석과 해설 정리

 

 

사무엘 하 11장 6절

 

다윗이 요압에게 기별하여 헷 사람 우리아를 내게 보내라 하매 요압이 우리아를 다윗에게로 보내니

 

헷 사람 우리아를 내게 보내라

밧세바가 잉태한 자신의 아이를 마치 우리아의 아이인 것처럼 꾸미기 위한 다윗의 간계(奸計)의 첫걸음이다. 즉 다윗은 우리아와 밧세바를 동침케 함으로써 밧세바의 잉태가 우리아로 말미암은 것처럼 위장하려고 전쟁터에 나가 있던 우리아를 급히 소환한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기에 급급한 다윗의 모습은 그가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에서 완전히 떠났음을 시사해 준다.

 

 

사무엘 하 11장 7절

 

우리아가 다윗에게 이르매 다윗이 요압의 안부와 군사의 안부와 싸움이 어떠했는지를 묻고

 

다윗이 … 묻고

자신의 속사정을 위장하기 위한 다윗의 거짓된 물음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점점 더 죄악을 쌓고 있음을 보게 된다. 즉 처음에 탐욕 죄(출 20:17)로부터 시작하여 간음죄(출 20:14)를 범한 그는, 이제 그 죄를 은폐하기 위하여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거짓 죄(출 20:16)를 또 하나 추가하고 있는 것이다.

 

 

사무엘 하 11장 8절

 

그가 또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 하니 우리아가 왕궁에서 나가매 왕의 음식물이 뒤따라 가니라

 

발을 씻으라

이는 히브리인의 관용적 표현으로 ‘휴식을 취하라’는 말이다. 즉, 사막 지역인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하루의 일이나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무엇보다 먼저 발을 씻고 휴식을 취했다(창 18:4, 눅 7:44). 그렇지만 여기서 다윗의 이러한 배려는 우리아로 하여금 밧세바와 동침케 하려는 간교한 음모에 따른 것이다. 한편, 혹자는 여기에서의 발(feet)은 남성의 성기(性器)를 의미한다고 해석하였다(Hertzberg). 그러나 그것은 우리아와 밧세바와의 동침을 노골적으로 강요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다윗이 자신의 속셈이 뻔히 드러나는 그 같은 말을 하였을 리는 만무하다. 그러므로 이 해석은 신빙성이 없다.

 

왕의 음식물이 뒤따라 가니라

여기서 ‘음식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사트’는 ‘선사하다, 바치다’는 의미의 ‘나사’에서 파생된 말로써 선물(膳物)을 의미한다(창 43:34, 에 2:18). 따라서 다윗이 우리아에게 특별휴가는 물론 이와 같이 선물까지 수여한 것은 전쟁 영웅에게 베푸는 예우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처럼 다윗이 우리아에게 영웅 대접을 한 것은, 전쟁에서 우리아를 갑자기 소환한 이유가 그것인 것처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기만책에 불과하였다.

 

 

사무엘 하 11장 9절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의 주의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잔지라

 

왕궁 문에서 … 잔지라

여기서 ‘왕궁 문’이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왕궁 문을 지키던 시위병들이 거처하던 숙소(왕상 14:27, 28)를 의미한다(Lange, Matthew Henry, Pulpit Commentary). 즉 우리아는 다윗 왕의 호의를 사양하고 왕궁의 시위병들과 함께 밤을 지새운 것이다. 그런데 우리아가 이와 같이 행한 이유는 아마 그의 충성심에서였을 것이다. 즉 그는 자기 혼자서만 집에서 편안히 쉬는 것을 사양할 정도로 자기 직무에 충실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다윗과의 대화 가운데서도 발견할 수 있다(11절). 한편 혹자는 이리하여 왕궁 시위병들과 함께 잠을 잔 우리아는, 그들로부터 밧세바가 다윗의 총애를 받고 궁전에 출입한 소식을 듣게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이는 우리아가 결국 밧세바의 부정(不貞)을 알게 되었다는 주장이다(Matthew Henry). 그러나 다윗에 대한 우리아의 계속된 충직스런 자세(12-14절)를 볼 때 이러한 주장은 신빙성이 없는 것 같다.

 

 

사무엘 하 11장 10절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되 우리아가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나이다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가 길 갔다가 돌아온 것이 아니냐 어찌하여 네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되 … 아니하였나이다

다윗이 사람을 시켜 우리아를 미행케 했을 수도 있음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Lange). 아니면 다윗의 음식 선물을 우리아의 집에 배달해 주었던 자(8절)가 우리아의 부재(不在) 사실을 확인하고 다윗에게 일러주었을 수도 있다.

 

 

사무엘 하 11장 11절

 

우리아가 다윗에게 아뢰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 하니라

 

언약궤 … 야영 중에 있고 … 내가 어찌 … 자리이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전쟁이 곧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이라는 의미에서 종종 언약궤를 가지고 전쟁터에 나아갔다(민 10:35, 36, 14:44, 수 3:6). 따라서 우리아의 이와 같은 진술은 ‘하나님께서도 현재 싸우고 계시거늘 어찌 나 같은 존재가 편히 쉴 수 있겠습니까’라는 뜻의 말이다. 아마도 우리아의 이러한 충성된 대답은 평소에는 다윗 왕을 충분히 감동시키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범죄 한 다윗에게는 실망스러운 대답이었다. 왜냐하면 지금 다윗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은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내 주 요압과 …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이는 하나님께 대한 간절한 신앙심은 물론, 한걸음 더 나아가 상관에 대한 우리아의 충성심과 동료에 대한 사랑, 따스한 인간애가 담겨있는 진솔(眞率)한 말이다. 따라서 다윗은 이러한 말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받고 회개할 수 있어야 했다. 즉 자신이 우리아와 같은 충직한 신하의 아내를 탐한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를 깨닫고 이제라도 그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회개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죄에 사로잡혀 올바른 판단력을 상실한 다윗은 자기의 계락이 수포로 돌아가자 그토록 충성스러운 우리아를 살해하고 만다(12-25절). 이는 결국 파괴적인 결말을 가져오고야 마는 죄의 특성(약 1:15)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비극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

여기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은 사실 다윗의 전인격과 존재를 가리키는 동일한 말이다. 그런데 우리아가 이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여 맹세한 것은 자신의 굳은 결심을 다윗 왕에게 확고하게 보이고자 함이었다(Lange, Baker Commentary). 한편, 여기서 우리아가 ‘여호와의 살아 계심’이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않고 ‘왕의 살아 계심’으로 맹세한 것은 그 당시 히브리인들의 관습에 따른 것이었다. 즉 히브리인들은 대개 자신보다 낮은 계층의 사람에게는 ‘여호와의 살아 계심’이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했으나(4:9, 12:5, 삿 8:19, 룻 3:13, 삼상 14:39, 왕하 2:2, 6), 자신과 동등한 계층이나 자신보다 높은 계층의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의 이름으로 맹세하였던 것이다(삼상 2:26, 17:55, 20:3, 왕하 2:2, 4, 6, 4:30).

 

 

사무엘 하 11장 12절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오늘도 여기 있으라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리라 우리아가 그날에 예루살렘에 머무니라 이튿날

 

오늘도 여기 있으라 … 이튿날

본 절로부터 14절까지를 읽어 보면, 다윗이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리라’고 한 본 절의 약속을 어기고 우리아를 하루 더 묵게 한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하반부에 언급된 ‘이튿날’에 다윗이 우리아를 궁정으로 불러들여 저녁까지 술에 취하게 하는 장면(13절)이 기록되어 있고 그다음 날 아침에 우리아를 되돌려 보낸 것처럼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14절). 그러나 실상 13절의 기록은 본 절의 ‘그날에 예루살렘에 유하니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다. 그리고 14절은 본 절의 ‘이튿날’에 일어난 일에 대한 설명이다. 이처럼 히브리인들은 한 사건을 기술함에 있어서 중복적(重複的)인 표현을 곧잘 사용한다. 즉, 그들은 처음 구절에서는 한 사건에 대해 간결히 진술하고, 다음 구절에서 그 사건을 보다 상세히 기술하는 점진적, 중복적 표현법을 즐겨 사용하였다(4:7 주석 참조). 결론적으로 다시 한번 언급하자면 13, 14절은 본 절의 간결한 기술에 대한 보다 상세한 설명 구절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사실을 좀 더 명확히 이해하려면 본 절의 ‘이튿날’이란 말 다음에 ‘우리아가 예루살렘을 떠나 전쟁터로 되돌아가니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무엘 하 11장 13절

 

다윗이 그를 불러서 그로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니 저녁때에 그가 나가서 그의 주의 부하들과 더불어 침상에 눕고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니라

 

취하게 하니

다윗이 사람의 정신을 혼란케 하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술의 힘을 빌어 우리아의 성적(性的) 충동을 유발하려 한 것을 가리킨다. 이는 자신의 악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다윗의 비열한 행동이다. 우리는 여기서 지금껏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양심과 고결함을 잃지 않았던 다윗(1:14-16, 4:5-12, 6:21, 삼상 24:4-7, 26:6-12) 조차도 순간적으로 가장 비열하게 만드는 죄의 놀라운 영향력을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