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하 5장 11절부터 25절의 말씀은, 다윗이 예루살렘에 궁전을 건축하고 많은 자녀를 출산하며 블레셋과의 두 번 전쟁에서 승리하는 장면입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다윗 왕국이 더욱 강력해지고 영향력을 끼치고 있음을 알려 줍니다. 본문을 주석과 해설을 참고하여 통독하였습니다.
사무엘 하 5장 11절-25절, 주석 및 해설 정리
사무엘 하 5장 11절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절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그들이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
11절 개요
본 절은 다윗 왕과 히람 왕 간의 화친(和親) 장면이다. 그런데 이는 17절 이하에 나오는 블레셋 정복 사건 이전에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블레셋 정복이 다윗과 히람 왕의 화친보다 시간상으로 빨랐을 것이라고 많은 학자들은 주장한다(Keil, Rust, Lange, Leon Wood). 이러한 견해가 가능한 것은 성경이 반드시 연대순으로만 배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제별로 배열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와 같은 견해가 가능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다. (1) 결정적으로 본문의 내용 자체가 이를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다. 즉 17절에 보면, 다윗의 블레셋 정복 사업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직후에 시작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다윗이 블레셋과 전쟁을 하며(17-25절) 성벽을 구축하는데 여념이 없었던(9절) 다윗 초기에 그가 거할 궁궐을 지었을 것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2) 또한 다윗이 즉위하던 때에는 히람(Hiram) 왕이 분명히 왕위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왕상 9:10에 의하면, 히람 왕은 최소한 솔로몬 통치 20년까지는 생존하였다고 하였으니, 그가 다윗의 즉위 초기부터 왕위에 있었다고 보기에는 너무 무리이다. 이에 대하여 고대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간접적인 증언을 해주고 있다. 즉 그의 고대사(Antiquities)에 볼 것 같으면, 히람 왕은 그의 부왕 아비바알(Abibaal)을 계승하여 34 년간을 통치하다가 그의 나이 53세에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Lange, Keil & Delitzsch). 따라서 그의 증거에 의하면,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할 때(1-3절) 그는 왕위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따라서 다윗과 히람의 화친은 다윗의 초기가 아니라 말기에 이루어진 사건임이 분명하다. (3) 또한 히람이 아무런 연고도 없이 다윗에게 사절단을 파견하였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즉 이는 분명 다윗이 블레셋을 비롯한 이방 민족들을 제압하자(17-25절) 다윗의 큰 세력을 인식한 히람 왕이 화친의 제스처(gesture)로 사절들과 백향목 등을 보내온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Leon Wood). 이상과 같은 증거들로 미루어 볼 때, 다윗과 히람 왕의 화친은 다윗의 블레셋 정복 사업보다 훨씬 이후에 일어난 사건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본 절은 저자가 다윗의 흥왕(10절)의 구체적 실례를 보여 주기 위해 앞당겨 기록한 내용일 것이다. 한편, 이로써 히람 왕이 다윗에게 사절단을 파견한 것은 다윗의 즉위를 축하하려는 목적이었다는 주장(Thenius)은 이상의 증거들에 위해 근거 없는 것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두로
두로(Tyre)는 시돈(Sidon)과 함께 B.C. 8-10 세기경 베니게(Phoenicia)의 중심적인 도시 국가였다. 이스라엘 최북단 국경에서 약 24 km 북서쪽에 위치해 있던 이 도시 국가는 지중해 연안 국가로서 일찍부터 목재, 밀기름, 포도주, 금속, 노예, 말 등을 수출하는 무역 국가였다. 한편 B.C. 10 세기 경에는 두로가 시돈을 압도한 듯 했으나 얼마 후에 두로는 시돈의 지배를 받은 것 같다(사 23:2, 12). 하지만 그들의 전성기에 두로의 상선들은 애굽과 스페인까지도 진출했었다.
히람
일명 ‘후람’(Huram)이라고도 하며, 이름의 뜻은 ‘고귀한 자’이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두로를 다스리던 왕으로서, 다윗은 물론 솔로몬의 건축 사업에 적극 조력한 것으로 유명하다(왕상 5:1-12).
백향목
레바논이 주산지인 백향목(cedar trees)은 왕궁, 성전(왕상 5:5, 6, 6:9, 10), 배의 돛대(겔 27:5), 우상 등을 건설 또는 만드는 데 사용될 정도로 최고급 건축 자재였다. 이 나무는 잘 썩지 않고 벌레가 먹지 않으며 또한 내구성이 강하며 방향(芳香)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히람 왕이 이렇게 좋은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냈다는 사실은 그 당시 다윗이 다스리던 신정 국가의 위세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가를 잘 보여 준다.
사무엘 하 5장 12절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
다윗이 … 알았더라
여기서 ‘알다’에 해당하는 원어 ‘야다’는 단순한 인식을 의미하는 ‘나카르’와는 달리 경험을 통해 아는 실제적인 지식을 의미한다. 즉, 이 말은 과거에 있었던 어떤 사건에 대한 단순한 기억이나 어떤 사물에 대한 단순한 인식을 의미하지 않고, 전에는 희미하게(막연히) 알았으나 여러 경험을 통해 그 본질을 더욱 확실하게 파악한 체험적인 지식을 의미한다(창 4:1, 18:19, 신 1:39, 8:5). 따라서 본 절에서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알았다는 말은 단순히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한 사건(3절)을 기억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와는 달리, 이 말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에 예루살렘 정복(6-10절), 블레셋 정복(17-25절), 히람 왕과의 화친(11절) 등 만사형통하는 여러 사건들을 통해 여호와께서 자기를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그 본질을 확실히 파악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즉 예를 들어 설명하면, ‘학교’라는 말만 아는 어린이가 직접 학교에 들어가 경험해 봄으로써 날마다 학교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듯이, 하나님께 기름 부음 받은 다윗이 그 기름 부음의 실제적인 의미를 통하여 더욱 승승장구하는 여러 경험들을 통하여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한편 이와 마찬가지로 본 절 후반부에서 여호와께서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다윗이 알았다는 말도 같은 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사 그 나라를 열방 중에 높이신 것은 다윗 개인에게 탁월한 지도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복을 베푸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는 여러 차례 경험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다.
사무엘 하 5장 13절
다윗이 헤브론에서 올라온 후에 예루살렘에서 처첩들을 더 두었으므로 아들과 딸들이 또 다윗에게서 나니
13절-16절의 개요
다윗이 헤브론에서 얻은 아들들(3:2-5)에 이어 예루살렘에서 새로 얻은 처첩 및 아들의 이름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3:2-5과 이곳에 언급된 다윗의 아들들은 모두 17명이나, 대상 3:1-9에는 모두 19명으로 나와 있다. 아마 여기에 언급되지 않은 2명은 일찍 죽었을 것이다. 즉 대상 3:1-9에는 이곳에 언급되지 아니한 노가와 또 한 명의 엘리벨렛이 나오는데 아마도 이들은 어린 나이에 죽었을 것이다(Wycliff, The Interpreter's Bible).
헤브론 시대
- 미갈(사울의 딸): 자녀 없음, 불임증에 걸림(6:16-20, 22, 23).
- 아히노암(이스르엘 여인): (1) 암논 - 근친상간, 압살롬에게 살해됨(13장).
- 아비가일(갈멜 여인): (2) 길르압 - 일명 다니엘(대상 3:1).
- 마아가(그술 왕 달매의 딸): (3) 압살롬 - 반란 일으켰으나 실패함(13-19장), 다말(딸) - 암논에게 강간당함(13:14).
- 학깃: (4) 아도니야 - 왕이 되려다 실패함(왕상 1-2장).
- 아비달: (5) 스바댜.
- 에글라: (6) 이드르암.
예루살렘 시대
- 밧수아(암미엘의 딸, 밧세바로도 불림): (7) 삼무아 - 일명 시므아(대상 3:5), (8) 소밥, (9) 나단 - 예수의 모계 형성(눅 3:31), (10) 솔로몬 - 일명 여디디야(12:25), 이스라엘의 3대 왕(왕상 14:5).
- 다수의 무명 왕비들: (11) 입할, (12) 엘리수아 - 엘리사마라고도 함(대상 3:6), (13) 엘리벳렛A - 엘벨렛이라고도 함(대상 14:5), (14) 노가, (15) 네벡, (16) 야비아, (17) 엘리사마B, (18) 엘랴다 - 브엘랴다라고도 함(대상 14:7), (19) 엘리벨렛B.
- 후궁들(13절): 첩의 아들들(대상 3:9).
예루살렘에서 처첩들을 더 두었으므로
그 당시 동양적인 관습에 따르면, 처첩의 수는 곧 권세의 상징이었다(Leon Wood, The Interpreter’s Bible). 따라서 다윗도 그 당시 보편화된 관습에 따라 많은 처첩을 거느렸는데 이제는 예루살렘에서 유다 지파 뿐 아니라 온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되었으므로(1-5절) 더욱 그러하였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다윗이 하나님의 율법(신 17:17)을 어기고 취한 많은 처첩들은 그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수치를 안겨 주었다. 그리고 훗날 다윗의 영향을 받은 솔로몬 역시 다윗보다 더 많은 처첩을 거느린 결과(왕상 11:3) 나라 안에는 각종 이방 우상 숭배 풍조가 만연하였고(왕상 11:4-8) 외환(外患)이 끊이지를 않았다(왕상 11:14-15). 따라서 우리는 이상과 같은 사례만 보더라도 일부다처 주의(一夫多妻主義), 축첩 행위가 명백히 하나님의 뜻(창 2:24)에 위배되는 것이며, 또한 그에 따르는 불행 역시 엄청난 것임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사무엘 하 5장 14절
예루살렘에서 그에게서 난 자들의 이름은 삼무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과
삼무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
이들은 모두 밧세바의 소생이다. 그런데 12:24에는 이들 중 마치 솔로몬이 밧세바의 첫 아들인 양 기록되어 있다. 아마 그 까닭은 솔로몬을 다윗의 왕위 계승자로 부각하려는 목적에서 기록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사무엘 하 5장 15절
입할과 엘리수아와 네벡과 야비아와
사무엘 하 5장 16절
엘리사마와 엘랴다와 엘리벨렛이었더라
엘리벨렛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구원이심’이다. 그런데 대상 3:6, 8에는 이 이름으로 불리는 다윗의 아들이 두 명 나온다. 본 절의 ‘엘리벨렛’은 이 중 대상 3:8에 나오는 ‘엘리벨렛’이다. 한편 다른 곳에서는 대상 3:6에 나오는 ‘엘리벨렛’을 ‘엘벨렛’(대상 14:5)으로, 본 절의 ‘엘리벨렛’은 그대로 표기함으로써(대상 14:7) 둘을 구분하고 있다.
사무엘 하 5장 17절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았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찾으러 다 올라오매 다윗이 듣고 요새로 나가니라
17절의 개요
대부분의 역사가들과 주석가들은 본 절 이하에서 보여 주고 있는 블레셋과의 전투가 실제로는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사건(6-10절) 이전에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Leon Wood, Keil, Payne, Hertzberg). 그들은 그 증거로서 다음과 같은 이유를 언급한다. (1)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소문을 들은 직후에 다윗과 전쟁을 벌이려 쳐들어왔다. 즉 다윗 왕은 즉위하자마자 블레셋의 대침공을 막아내야 했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점령할 여유(6-10절)가 없었다. (2) 블레셋 군대가 예루살렘을 직접 공략하지 아니하고 르바임(Rephaim)을 공격했다(18, 22절). 이와 같은 사실은 아직껏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못했음을 보여 주는 좋은 증거이다(Leon Wood). (3) 본 절의 ‘블레셋 사람이 다윗을 찾았다’는 말은 다윗이 아직 예루살렘에 그의 거처를 정하지 않았음을 강력히 시사해 준다(9절). (4) 더욱이 본문의 평행 구절에 해당되는 23:13, 14에서는 다윗이 블레셋의 침공을 맞이하여 아둘람 굴에 진영을 설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말한다. 이는 그가 아직도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못했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즉, 그가 이미 예루살렘을 정복했었더라면, 구태여 아둘람 굴에 진영을 설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상과 같은 여러 증거들로 볼 때 다윗의 블레셋과의 전투는 예루살렘 정복 이전에 일어났던 사건임에 틀림없다.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 다윗을 찾으려 다 올라오매
블레셋 군대가 전에는 다윗을 죽이려 하지 않다가 그가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 곧 그를 죽이려 한 것은 그들의 얄퍅한 정치적인 계산 때문이었다. 즉,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전에 그를 죽일 수 있는 처지에서도 그를 죽이지 않았다(삼상 27:1-12). 그 이유는 다윗을 당시 이스라엘이 왕 사울의 견제 세력으로 키워 이스라엘이 통일 국가가 되지 못하도록 하자는 계산 때문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1-3절) 길보아 전투(삼상 31장) 이후 북방 이스라엘 지경에서 크게 세력을 확보한 그들은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2:10 주석 참조.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확장된 세력을 굳히기 위해 이제 다윗을 죽이려 한 것이다(Keil & Delitzsch, Lange, Matthew Henry, Pulpit Commentary). 한편, 본 절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다 올라왔다’고 하는 말은 당시 그들이 통일된 다윗의 세력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었는가를 잘 보여 준다.
요새로 나가니라
여기서 ‘요새’에 해당하는 ‘므추다’는 ‘그물, 접근하기 힘든 장소, 요새’ 등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학자들 간에는 이 ‘요새’가 정확히 어디를 가리키는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이 다르다. (1) 요새는 다윗이 점령한 예루살렘 요새이다(Lange). 그러나 이 주장은 앞서 블레셋과의 전투가 예루살렘 점령 이전에 일어났던 사건임을 보여준 여러 증거들로 미루어 볼 때 옳지 못하다. 특히 본 절의 ‘나가니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라드’는 본래 ‘내려가다’는 뜻이다. 따라서 원래 높은 고지에 자리 잡고 있는 예루살렘 요새로 다윗이 내려갔다는 말은 모순이 된다. 그렇다면 여기의 ‘요새’는 분명히 예루살렘 요새를 가리키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Keil). (2) 이 요새는 아둘람 굴을 의미한다도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Keil & Delitzsch, Thenius, Pulpit Commentary). 그 근거로 그들은 평행 구절인 23:13, 14에서 다윗이 아둘람 굴에 그의 진영을 설치해 놓았던 사실을 들고 있다. 이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견해인데 많은 학자들도 대체로 이에 동의한다. 한편, 이 아둘람 굴은 다윗이 사울 왕과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일시 도피하였던 곳으로 이곳에서 다윗은 그를 사모하여 추종한 자들의 장관이 되기도 하였다(삼상 22:1, 2). 오늘날 이곳은 ‘텔 에쉬-쉐익 마두쿨’(Tell esh-Sheikh Madhkur)로 알려지고 있는데 가드와 베들레헴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사무엘 하 5장 18절
블레셋 사람들이 이미 이르러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르바임 골짜기는 그 뜻이 ‘거인의 골짜기’인 것으로 보아 이는 아마 그 골짜기 부근에 살았던 거인족 ‘르바임’(신 2:11)의 이름을 따서 붙인 지명인 듯하다(Lange, Pulpit Commentary). 실제로 그 지명처럼 르바임 골짜기는 길이가 약 5 km, 폭이 약 3 km 정도나 되었으니 엄청난 수의 병력이 그곳에 포진(布陣)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르바임 골짜기는 예루살렘 남서쪽에 위치한 골짜기다. 이 골짜기의 북쪽 끝은 유다 지파의 북쪽 접경지인 동시에 또한 베냐민 지파의 남쪽 경계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블레셋 군대가 이곳을 먼저 점령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스라엘과 유다의 경계지인 이곳을 차지함으로써 이스라엘을 남북으로 분단시키고자 함이었다(Leon Wood). 그런데 이들이 이처럼 엄청난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다음과 같은 요인 때문이었을 것이다. (1) 르바임 골짜기 바로 남쪽에 그들의 요새인 베들레헴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23:14). 아마도 이 베들레헴은 길보아 전투 때에(삼상 31:1) 그들의 손안에 들어갔을 것이다. (2) 또한 그들은 아직껏 유다와 베냐민의 경계지인 예루살렘 요새가 다윗의 손에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계획을 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 17절 주석 참조.
사무엘 하 5장 19절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이 말은 다윗이 우림과 둠밈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었다는 뜻일 것이다. 그 당시 다윗과 함께 했던 제사장 아비아달은 우림과 둠밈을 단 에봇을 소유하고 있었다. 2:1 주석 참조. 아무튼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중요한 일을 당할 때마다 먼저 여호와의 뜻을 구한 다음 그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그의 훌륭한 신앙을 엿볼 수 있다(2:1, 삼상 23:9, 30:7).
네 손에 넘기리라
이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개인의 생명이나 국가의 장래를 막론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음을 나타내 준다(16:8, 창 14:20, 신 2:30, 수 10:8, 왕상 20:13). 신 1:2 주석 참조.
사무엘 하 5장 20절
다윗이 바알브라심에 이르러 거기서 그들을 치고 다윗이 말하되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 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하므로 그 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부르니라
바알브라심
본 절 후반부의 ‘그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부르니라’는 말은 이 지명이 예로부터 내려온 고유의 지명이 아니라 다윗의 대첩(大捷)을 기념하기 위해 새로 붙여진 이름임을 보여 준다. 한편 바알브라심은 ‘주’(Lord)라는 뜻의 ‘바알’과 ‘터치고 나옴, 부서뜨림’, 또는 ‘흩음’을 의미하는 ‘페라침’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복합어이다. 따라서 이 말의 의미는 ‘흩으심의 주’이다. 즉, 이는 블레셋 대군을 물을 흩어버림과 같이 쉽게 물리쳐 주신 여호와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다윗이 붙인 신지명(新地名)이다. 한편, 이곳의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바알’이란 명칭이 이방 종교의 신 ‘바알’과 일치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8 주석 참조. 즉 바알 종교로 인해 ‘바알’이란 명칭 자체를 혐오하게 되었던 후대의 유대인들이 그 명칭을 내포하고 있는 ‘바알브라심’이란 지명 자체를 없애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Rust).
여호와께서 … 내 대적을 흩으셨다
다윗은 이처럼 블레셋을 격파한 일이 자신의 지략, 용맹성, 군사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즉 그는 어떤 중요한 일을 수행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했고(19절) 그 일이 끝난 후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사무엘 하 5장 21절
거기서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우상을 버렸으므로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치우니라
우상을 버렸으므로
본 절은 (1) 당시 르바임 골짜기에 편만에 있던 블레셋 대군(18절)이 다윗의 정예 부대 앞에 얼마나 혼비 백산하게 후퇴했는가를 보여 주며, (2) 또한 다윗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능력(20절)이 얼마나 강력했는가를 보여준다(Hertzberg). 한편, 블레셋 인들이 전쟁터에 그들의 우상을 가져온 것은 그들의 신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 준다고 믿었던 당시 고대 근동 국가의 미신적 관습 때문이었다. 이는 과거 이스라엘이 법궤를 메고 전쟁터에 나갔던 사실(삼상 4:3, 4)과 외형상 일치한다(Keil & Delitzsch, Lange, Matthew Henry, Wyccliffe, Pulpit Commentary).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치우니라
같은 내용의 기사인 대상 14:12에는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우상을 불태운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처럼 다윗이 우상을 불태운 것은 우상에 대한 여호와의 율법대로 순종한 행위였다(신 7:5, 25). 아무튼 다윗의 이러한 행위는 수년 전 아벡 전투에서 승리한 블레셋 군대(삼상 4장)가 여호와의 법궤를 빼앗아 들고 행진한 사실(삼상 5:1)과 대조적이다. 즉, 그들은 여호와의 법궤를 들고 갔으나 다윗은 그들의 우상을 가증한 것으로 여겨 불태웠다(Leon Wood).
사무엘 하 5장 22절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올라와서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올라와서
다윗의 정예 부대 앞에서 도망갔던 블레셋 군대(17-21절)가 다시 전열(戰列)을 갖추고 제2차 공격을 해오는 장면이다. 아마도 그들은 이스라엘을 선제공격하기는커녕 도리어 예기치 않은 역습을 받아 뿔뿔이 도망쳐야 했던 첫 번째의 실패를 만회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들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23-25절). 즉 그들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도움을 힘입은 이스라엘에게 두 번 씩이나 연속해서 대패하므로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거의 상실하고 말았다.
사무엘 하 5장 23절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니 이르시되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올라가지 말고 … 기습하되
여기서 ‘올라가지 말라’는 말은 고지(高地)에 올라가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블레셋 군대와 정면으로 맞서지 말라는 뜻이다(Keil).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께서 앞에서와는 달리(19, 20절) 이번에는 전면전을 피하고 기습전을 택하라고 하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즉 당시 (1) 긴장하고 있는 블레셋 군사들의 사기를 완전히 꺾어놓고 (2) 그들을 이스라엘 지경에서 아주 멀리 쫓아내기 위한 하나님의 작전의 일환 때문이었다(Leon Wood). 아마도 블레셋 군은 지난번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스라엘 군의 정면 공격을 예상하여 만반의 대비를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계획을 미리 아시고 이번에는 다윗에게 기습 공격을 명하셨던 것이다.
뽕나무 수풀
뽕나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카’가 과연 어떤 나무를 의미하느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여러 견해들이 있다. (1) 배나무로 보는 견해(Rosenmuler, Vulgate). (2) 개역한글 성경처럼 뽕나무(mulberry tree)로 보는 견해(Luther, KJV). 그러나 본래 ‘울다, 통곡하다’라는 뜻을 지닌 ‘바카’에서 파생된 이 말은 문자 그대로 ‘우는 나무’(weeping tree)를 가리킨다. 여기서 ‘나무가 운다’라는 것은 ‘나무가 눈물을 흘린다’는 말이니 이는 곧 ‘수액(樹液)을 낸다’는 의미이다(Wycliffe). 따라서 대개의 학자들은 ‘바카’가 ‘뽕나무’나 ‘배나무’를 의미하지 않고 수액(樹液)을 내는 ‘발삼나무’(Balsam tree)를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Lange, Keil, Rust). 한편, 달만(Dalman)은 이 ‘바카’가 관목류(灌木類)가 아닌 덤불에 가까운 종류라고 하였다(Hertzberg). 이렇게 볼 때 바카, 곧 발삼나무 수풀은 이스라엘 군이 매복해 있기에 아주 적당한 장소였을 것이다.
사무엘 하 5장 24절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군대에게 보여 주는 공격 신호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다음과 같이 의견이 분분하다. (1) 이 공격 신호는 단지 강한 바람에 의해 나무 꼭대기가 흔들리는 것이었다는 견해이다(Rust). 이 주장은 바람이 곧 여호와의 영(靈)을 상징하며, 그 움직임은 여호와의 임재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고대의 관념에 기초한다. 그러나 이 견해는 하나님의 공격 신호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 중 하나였으며 나무 흔들리는 소리가 아닌 걸음 걷는 소리였다는 점에서 적합하지 못하다. (2) 또한 이 공격 신호를 ‘나무의 신탁’(tree oracles)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Hertzberg). 즉, 다윗은 나무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징조를 가지고 점을 쳐서 하나님의 공격 신호를 찾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견해는 너무나도 미신적이다. 당시 참된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신앙하던 다윗(19, 23절)이 이처럼 어리석은 미신적 행위에 탐닉하였을 리 만무하다. (3) 이 공격 신호는 여호와의 군대가 하늘로부터 임하는 소리였다는 견해이다(Lange, Keil). 즉, 이러한 현상은 야곱과 엘리사에게 보였던 하나님의 군대의 진군을 의미한다는 주장이다(창 32:2, 3, 왕하 6:17). 이 견해는 ‘걸음 걷는’에 해당하는 기본 동사 ‘체아다’가 ‘행군하다, 전진하다’는 뜻이며 이번 전쟁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성전(聖戰)이었다는 점에 의거할 때 비교적 타당하다.
사무엘 하 5장 25절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대상 14:16에는 ‘기브온에서부터 게셀까지 이르렀더니’라고 되어 있다. 즉 본 절의 게바(Geba)가 대상 14:16에는 기브온(Gibeon)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심각한 차이에 대해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해석들을 제시하고 있다. (1) 본 절의 게바는 본래 기브온이었으나 이 두 지명의 세 ‘자음’이 똑같기 때문에 필사자가 실수하여 기브온을 게바라고 오기(誤記)했다는 해석이다(Keil, The Interpreter’s Bible). 이 해석은 게바의 위치가 예루살렘 동북쪽인 반면 게셀(Gezer)의 위치는 정반대인 예루살렘 북서쪽이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즉, 정신없이 도망치는 블레셋 패잔병들이 예루살렘 동북쪽으로 갔다가 다시 정반대인 북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는 사실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반면, 기브온은 예루살렘에서 게셀로 가는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게바보다는 기브온이 더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다음에 제시되는 견해에 비추어 볼 때 분명히 옳지 않다. (2) 삼상 13:3에 의하면, 게바는 블레셋 군의 강력한 수비대(守備隊)가 있었던 곳이다. 한때 요나단에게 이곳을 빼앗겼던(삼상 13:1-4) 블레셋 군대는 길보아 전투(삼상 31장) 때 이곳을 다시 재탈환 하여 전보다 강력한 진지를 구축하였음에 틀림없다. 따라서 본문에서 물처럼 흩어진 패잔병들이 그들의 강력한 수비대가 있는 게바로 일단 후퇴했다가 그곳에서도 이스라엘군을 막아낼 수 없게 되므로 그들의 본토인 게셀로 후퇴했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다(Lange, Pulpit Commentary). 그러므로 블레셋군이 제1차로 후퇴했던 곳은 기브온이 아니라 게바임이 분명하다. (3) 그렇다면 이번엔 대상 14:16의 기브온이 또 다른 필사자의 오기(誤記)라고 주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그렇다고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일단 게바로 후퇴했던 블레셋군이 게셀로 도망갈 때 기브온을 거쳐 도망갔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편, 블레셋군의 최종 도착지인 게셀은 블레셋 영토의 동북쪽 경계지이며 이번 전투 지점(르바임 골짜기)에서 최소한 24 km나 떨어진 곳이었다(Leon Wood). 이로 보아 다윗 군대의 승리는 여호와께서 거두게 하신 완전한 승리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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