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하 5장 1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은, 드디어 다윗이 전체 이스라엘의 왕의 자리에 오르는 내용입니다. 통일 왕국의 왕이 된 다윗은 여부스 사람들이 사는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수도로 확정합니다. 본문을 주석과 해설과 함께 개역개정 성경으로 통독하였습니다.
사무엘 하 5장 1절-10절, 주석 및 해설 정리
사무엘 하 5장 1절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
어떤 학자들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3절에 기록된 ‘이스라엘 모든 장로’와 같은 의미로 본다(Rust, The Interpreter’s Bible). 즉, 이들은 20세 이상의 모든 지파의 인구가 헤브론까지 내려갈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따라서 이들은 이스라엘 지파의 모든 장로들이 이스라엘 온 백성들을 대표하여 왔기 때문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온 것처럼 저자가 기록한 것이라는 주장을 편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대상 12:23-40에 비추어 볼 때 옳지 않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다윗을 위해 헤브론으로 나아온 인구가 무려 약 35만 명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절의 ‘이스라엘 모든 지파’와 3절의 ‘이스라엘 모든 장로’는 같은 의미가 아니다. 이렇게 볼 때, 1-2절은 이스라엘 온 지파가 다윗을 자기들의 왕으로 삼으려는 장면이며 3절은 그 결과 이스라엘을 대표한 장로들이 다윗을 공식적으로 왕으로 삼는 장면이라 하겠다(Leon Wood, Pulpit Commentary). 즉 1-3절은 한 사건을 중복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과정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왕의 골육
직역하면 ‘당신의 뼈 그리고 당신의 살’(thy bone and thy flesh, KJV)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은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상호 간의 혈육 관계를 나타내는 관용어이다(창 2:23, 29:14, 37:27, 삿 9:2). 따라서 이는 결국 다윗에 대하여 백성들이 전적인 신뢰를 표한 말임을 알 수 있다.
사무엘 하 5장 2절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출입하게 하신 분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모치 웨하메비’는 문자적으로 ‘나오고 들어감’을 의미하나, 주로 이 용어는 ‘군대를 지휘하기 위해 출입하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삼상 29:6, 왕상 3:7, 대하 23:7, 수 14:11). 따라서 여기서는 사울 휘하에서 이스라엘 군대를 잘 이끌어 백성들의 지지를 받았던 다윗의 지도력(삼상 18:6, 7)을 의미하기 위해 사용되었을 것이다(Lange, Matthew Henry).
이스라엘의 목자 … 주권자가 되리라
여기서 ‘목자’란 백성들에 대한 봉사의 측면을 강조하는 말이다. 즉 신정왕국(神政王國)의 왕은 하나님을 대리하는 자로서 그분의 뜻대로 백성들을 인도하며 보호하고 먹일 의무가 있는 것이다. 반면 ‘주권자’란 백성들에 대하여 강한 지도력, 통치권을 행사하는 측면을 강조하는 말이다. 즉 왕은 비상시에 군 최고의 통수권자로서 백성을 효율적으로 관리, 적의 위협을 분쇄해야 할 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능률적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公義)에 입각하여 국정(國政)을 이끌어 갈 의무가 있는 것이다. 한편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직접 본 절에 언급된 것과 같은 말을 하셨다고 하는 기록이 없다. 그러나 3:9, 10, 18, 삼상 13:14, 15:23, 26, 28, 25:30 등을 살펴볼 때, 하나님의 이 같은 신탁(信託)은 이미 그 당시 백성들 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던 것이다.
사무엘 하 5장 3절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언약을 맺으매
왕위 즉위식 이전에 행하는 공식적인 행사였던 이 언약은 쌍방간의 합의에 의한 언약이 아니라 일방적인 언약이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을 ‘다윗 왕이 …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라는 본 구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즉, 본 구절의 주어는 ‘그들’이 아니고 ‘다윗’이다. 따라서 언약의 주체는 이스라엘 지파가 아니었고 다윗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이 언약이 쌍방적 성격이 아니라 일방적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은 하나님의 언약(삼상 13:14, 15:23, 26, 28)과 관련이 있다. 즉,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시며 왕으로 삼으시겠다고 하신 언약은 다윗이나 기타 모든 백성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단독적으로 결정하신 일방적인 언약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다윗 왕을 자기들의 왕으로 모시겠다고 하는 서약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을 나타내는 것이지 결코 군주와 국민들 간의 어떠한 이해관계를 따져 협상하는 것이 아니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다윗을 왕으로 삼겠다고 맹세하므로, 그 나라에 큰 복을 베푸시겠다고 하신 하나님과의 언약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언약의 내용은 다윗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충성하겠다는 서약이 아니었고 그 반대로 백성들이 다윗 왕에게 충성하겠다는 서약이었다(Hertzberg). 따라서 이 언약을 통해 본 신정 국가의 국가관은, 군주와 국민의 계약 관계를 국가 성립의 근본으로 본 근대의 국가관과는 크게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신정 국가의 왕이 절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독재자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가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대리자(代理者) 임을 뜻한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다윗이 사무엘 당시(삼상 16:13), 그리고 유다 지파의 왕으로 세움 받을 당시(2:4)에 이어 마지막 세 번째로 기름 부음을 받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와 동일한 내용을 기록한 대상 11:3에는 ‘여호와께서 사무엘로 전하신 말씀대로 되었더라’는 말이 덧붙여 있다. 이와 같이 다윗의 세 번째의 기름 부음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다윗과 맺으신 그 언약(삼상 16:1)을 어김없이 완성한 감격적인 사건이었다. 2:4 주석 참조.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이로써 이제 유다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다시 사울 통치 때와 마찬가지로 한 왕 아래 통일되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왕 아래에서 최초로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이루었다는 의의를 지닌다.
사무엘 하 5장 4절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
삼십 세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 다윗 왕의 나이인 삼십 세는 성경상으로 볼 때 하나님의 공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최소한의 나이였다. 즉, 이 나이는 (1) 레위인이 성전에서 봉사를 시작할 수 있는 나이였으며(민 4:3, 대상 23:3), (2)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던 나이였으며(창 41:46), (3) 또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나이였다(눅 3:21-23). 이와 같은 사실은 적어도 성도는 이 나이가 되어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공적 업무를 수행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암시적 메시지를 제공해 준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나이와 학력 등에 구애받지 않고 당신의 사람을 적재 적시(適材適時)에 들어 쓰신다(삼상 17:41-54). 그러나 인격적 성숙은 나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음도 사실이다.
사무엘 하 5장 5절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
헤브론에서 … 예루살렘에서 … 다스렸더라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왕으로 즉위한 시점에서 그의 통치 연대를 개괄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는 성경 기자들이 왕조(王朝)의 역사를 기술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서술 양식 중 하나이다(왕상 15:9, 10, 16:29, 왕하 3:1, 12:1, 13:1, 14:2, 23, 15:27).
사무엘 하 5장 6절
왕과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주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그들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그의 부하들이
여기서 가리키는 다윗의 부하들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다윗에게 서약하기 위해 온 ‘온 이스라엘의 군대’(1-3절)라는 주장이다(Lange, Keil & Delitzsch, Pulpit Commentary). 이 주장은 대상 11:4의 내용과 일치한다. (2)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이 종자들이 온 이스라엘의 군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윗과 행동을 함께 해온 그 정예병들(삼상 22:4, 23:13)이라고 주장한다(Rust, Hertzberg). 그들은 그 근거로서, 만일 온 이스라엘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정복했다면 굳이 본서 저자가 ‘다윗의 부하들’이란 말을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내세운다. 그런데 (1) 번의 견해는 평행 구절(대상 11:4)과 일치하며 (2) 번의 견해는 문자 해석상 그럴듯하므로, 이 두 견해는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충적인 견해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즉 다시 말해서,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 가까이까지는 나아갔으나, 실제로 지형적으로 험난한 예루살렘을 공략한 자들은 다윗의 부하들, 곧 요압과 그 정예 군사들이었다고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예루살렘
다윗이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천도(遷都)하려 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은 정치적, 지형적, 종교적인 이점들 때문이었다. (1) 헤브론은 유다에서 볼 때는 중심 지역이었지만 온 이스라엘로 볼 때는 너무 남쪽에 치우쳐 있었다. 2:1 주석 참조. 그러나 예루살렘은 온 이스라엘을 치리하기에 아주 좋은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었다(Pulpit Commentary). (2) 예루살렘은 주위가 깊은 골짜기로 형성되었고 성읍 자체가 고지에 자리 잡고 있는 천혜(天惠)의 방어 요새였다(Wycliffe). (3) 예루살렘 동쪽 기드론 골짜기에는 기혼 샘이 있어 충분한 수원(水源)을 확보하고 있었다(Lange). (4) 예루살렘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지였다(수 15:7, 8, 18:6). 따라서 예루살렘은 두 지파 간의 심각한 갈등을 해소시키며, 더 나아가 온 나라의 화합을 도모할 수 있는 적합한 도읍지였다(Keil & Delitzsch). (5) 예루살렘은 온 이스라엘의 중심부로서 중앙 성소를 짓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었다. 즉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모실 수 있는 성전 건축의 최적소로 예루살렘을 지목하였던 것이다(Leon Wood).
여부스 사람
여부스 족속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이전부터 예루살렘과 그 주변 산간 지역에 계속 정주(定住)해 왔던 족속이다(민 13:29, 수 15:8, 18:16). 이들은 여호수아 당시 이스라엘의 침공을 받아 일시적으로 패주 하기도 했으나(수 10:23, 26) 완전히 정복당하지는 않았다. 그 후 사사 시대에 이르러 유다(삿 1:8) 및 베냐민 지파의 자손들(삿 1:21)도 그들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그들은 점차 세력을 확보하고 마침내 예루살렘을 그들의 방어 기지로 삼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제 다윗에 의해서야 비로소 완전히 정복당한 것이다(7-9절). 한편, 여부스는 한때 예루살렘의 다른 이름으로도 사용되었다(수 18:16, 28, 삿 19:10, 대상 11:4).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여부스 족속이 쳐들어 오는 다윗에게 큰소리 치는 장면이다. 지리적으로 여부스 족속이 유다와 베냐민 지파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오랫동안 독립한 나라로서 이와 같이 큰 소리를 칠 수 있었던 까닭은 다음과 같은 예루살렘의 지형적인 이점 때문이었다. (1) 예루살렘은 당시 가나안을 남북으로 연결시켜 주던 주요 도로인 ‘왕의 대로’(King’s Highway, 민 20:17, 21:22, 신 2:27)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2) 예루살렘 남쪽과 동쪽의 성벽은 절벽과도 같은 가파른 언덕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3) 예루살렘 주변에는 외적의 침입을 막아 주는 기드론, 힌놈, 두로베온과 같은 깊은 골짜기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천혜의 방어 기지를 가지고 있었던 그들이었기에, 그들은 자신 만만하게 다윗을 향해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고 큰소리쳤던 것이다.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매튜 헨리(Matthew Henry)는 이와 관련, 여부스족들이 다윗을 조롱하기 위해 실제로 예루살렘 성벽에 맹인과 다리 저는 자들을 세워놓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Matthew Henry’s Commentary). 그 사실 여부는 오늘날 확인할 수 없지만, 아무튼 본 절은 당시 예루살렘 성을 과신(過信)했던 여부스인들의 자만을 충분히 증거해 준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 철옹성 여리고도 함락시킨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권능(수 6:1-20)을 기억해야만 했다.
사무엘 하 5장 7절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시온 산성
시온은 ‘요새’란 뜻으로, 예루살렘 남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구릉(丘陵)의 이름이다(Keil & Delitzsch, Pulpit Commentary). 그런데 이곳에 세워진 산성을 다윗이 빼앗아 다윗 성(the city of David)이라 이름하였다. 그러나 ‘시온’은 광의적으로 예루살렘 전체를 묘사하는 말로 곧잘 사용되었는데(왕하 19:21, 사 3:16, 슥 2:10),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었다(사 24:23, 옵 1:17).
사무엘 하 5장 8절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을 치라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
다윗이 천혜의 요새 시온 산성을 어떻게 빼앗을 수 있었는가를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여기에서 ‘물 긷는 데’에 해당하는 원어 ‘친누르’는 ‘하수도, 배수로, 지하 통로’ 따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곧 예루살렘 남동쪽에 있는 기혼 샘에서 남쪽 저수지로 흘러 들어온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수직으로 파놓은 갱도(坑道)를 의미한다. 이 갱도는 성 안에서 성 밖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난공 불락의 예루살렘 성안으로 군사들이 침입해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따라서 다윗이 이곳을 통해 적 진지에 들어가 공을 세우는 자에게 푸짐한 상급을 주겠다고 약속하자 요압과 그 군사들이 이에 응하였던 것이다(대상 11:6). 한편 이 수갱(水坑)은 1886년 그 존재가 확인되었으며 1967년 워렌(Charles Warren)이 재차 발견하여 현재 ‘워렌 수갱’이라 불려지고 있다. 또한 고고학자들은 이 수갱이 B.C. 2000년 경에 예루살렘 거민들에 의해 건설되었음도 밝혀내었다.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
여기서는 다윗이 당시 지형적인 이점을 의지하고 교만하게 말했던 여부스 사람들(6절)을 비꼬는 말이다. 즉 그들은 불구자가 아니었지만 이제 다윗의 공격 앞에 꼼짝 못하고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는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이 된 셈이다. 그런데 이는 훗날 속담이 되어 ‘미운 사람’을 의미하게 되었다. 즉 여부스 인들처럼 자기의 힘만 믿고 교만하여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은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 어떠한 집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사무엘 하 5장 9절
다윗이 그 산성에 살면서 다윗 성이라 이름하고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밀로
채우다(히, 말레아)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이 ‘밀로’라는 말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학자들은 이것이 흙이나 돌로 쌓아 올린 성채(城砦)를 의미한다는 데 의견을 모은다. 이 성채는 아마도 여부스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읍에서 가장 취약 지구인 북방의 방어를 위해 동북쪽이나 북서쪽 한쪽 모퉁이에 세워 놓았던 것일 것이다(Hertzberg, Keil, Lange, Rust). 아무튼 다윗은 이 밀로를 기점으로 하여 예루살렘에 성벽을 둘러쌓음으로써 외세 확장의 기틀과 여호와 종교를 위한 중앙 성소의 기초(대하 3:1)를 마련하게 되었다. 한편, 솔로몬과 히스기야는 이 밀로를 증축, 또는 수축한 바 있다(왕상 11:27, 대하 32:5).
사무엘 하 5장 10절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이에 해당하는 원어 ‘야훼 엘로헤 체바오트’는 ‘천군 천사(天軍 天使)의 하나님 여호와’로도 번역될 수 있는 말이다. 왜냐하면 ‘체바오트’의 기본형 ‘체바아’는 본래 ‘군대, 무리’란 뜻으로,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거느리고 계시는 수많은 하늘 군대인 천사들(욥 33:23, 느 9:6, 시 103:21, 마 10:27, 히 12:22)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아무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란 하나님의 큰 권능과 위엄을 강조하는 신명(神名)으로서, 약칭 ‘야훼 체바오트’로 종종 표기된다(6:2, 삼상 15:2, 왕하 3:14, 대상 17:24, 시 24:10, 사 1:9).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하심의 결과이다. 즉 하나님께서 친히 하늘 군대를 인솔하시어 다윗의 대적을 물리쳐 주시니(6-9, 17-25절) 그의 왕국이 안으로는 물론 대외적으로 인정받게 될 정도로(11절) 강성해진 것이다. 12절 주석 참조.
'주석 보며 성경 읽기 > 10 사무엘 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무엘 하 6장 1절-11절, 주석 및 해설 정리 (1) | 2022.09.26 |
---|---|
사무엘 하 5장 11절-25절, 주석 및 해설 정리 (1) | 2022.09.26 |
사무엘 하 4장 1절-12절, 주석 및 해설 정리 (1) | 2022.09.26 |
사무엘 하 3장 27절-39절, 주석 및 해설 정리 (1) | 2022.09.26 |
사무엘 하 3장 17절-26절, 주석 및 해설 정리 (0) | 2022.0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