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하 2장 12절부터 32절까지의 말씀은, 같은 민족 두 나라 사이의 전쟁에 관한 내용입니다. 아브넬과 요압의 비정한 결정으로 청년들이 죽고 전면전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 과정 중에 아브넬에 의해 요압의 동생 아사헬이 목숨을 잃게 됩니다. 본문을 주석을 참고하여 개역개정 성경으로 읽고 묵상하였습니다.
사무엘 하 2장 12절-32절, 주석 및 해설 정리
사무엘 하 2장 12절
넬의 아들 아브넬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신복들은 마하나임에서 나와 기브온에 이르고
기브온에 이르고
‘기브온’의 뜻은 ‘언덕’이다. 예루살렘 북서쪽 9 km 지점에 위치한 히위 족속의 성읍으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후 베냐민 지파에게 기업으로 분배되었다(수 18:25). 한편 이곳은 헤브론에서는 약 35 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나 마하나임에서는 약 60 km 정도나 떨어져 있다. 따라서 이스보셋이 군사를 이끌고 먼저 이곳으로 나아왔다는 것은 곧 이곳을 차지하기 위하여 기습적으로 군사 행동을 감행하였음을 의미한다.
사무엘 하 2장 13절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다윗의 신복들도 나와 기브온 못 가에서 그들을 만나 함께 앉으니 이는 못 이쪽이요 그는 못 저쪽이라
기브온 못 가
이곳에는 양 진영이 탐을 낼 만큼 많은 물을 담아 놓을 수 있었던 큰 저수지가 있었다. 미국 펜실바니아 박물관 팀(1956-1960년, J. B. Pritchard 가 이끔)의 발굴 조사에 의해 오늘날 그 못의 규모가 드러났다. 그 안에는 79 개의 층계가 나선형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직경은 약 11 m, 깊이가 약 14m이다. 따라서 이곳에 물을 채우면 4-6천 명이 물을 마실 수 있었으니 당분간 성이 포위되더라도 물 걱정은 안 해도 될 정도였다. 이렇게 볼 때, 기드온 못은 물이 귀한 가나안에서 아주 중요한 식수 공급원이었으며 전략적으로 차지하는 의미 또한 매우 컸다. 그러므로 이곳의 지배권을 쟁탈하기 위해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사무엘 하 2장 14절
아브넬이 요압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청년들에게 일어나서 우리 앞에서 겨루게 하자 요압이 이르되 일어나게 하자 하매
겨루게 하자
이 말의 히브리어 ‘사하크’는 ‘비웃다, 조롱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이 여기서는 양 진영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말은 사람의 흥미를 돋우는 어떤 군사 게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신 이는 서로 상대방의 약점을 헐뜯고 비웃고 욕하는 가운데 싸우는 처절한 칼부림(sword play, Living Bible)을 의미한다. 아마 과거 블레셋의 골리앗이 제안하였던 싸움이 바로 이와 같은 성격이었을 것이다(삼상 17:8-9). 풀핏 주석에 따르면 본격적인 전투에 앞서 벌어지던 이 같은 전쟁놀이는 과거 북유럽이나 아라비아 지방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요압이 이르되 일어나게 하자
아브넬의 제안에 요압이 이처럼 선뜻 응낙한 것은 반드시 자기 부하들이 이길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신 누구보다도 지기 싫어하고 급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아브넬로부터 조롱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 싫어 이를 거절하지 않았을 것이다(Matthew Henry). 하지만 그 결과는 양측 모두 12 명씩의 인명을 잃게 되었다. 만일 아브넬이나 요압 중 한 사람만이라도 부하를 사랑하며 생명의 고귀함을 알고 있었다면 이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무엘 하 2장 15절
그들이 일어나 그 수대로 나아가니 베냐민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편에 열두 명이요 다윗의 신복 중에 열두 명이라
열두 명이요 … 열두 명이라
이처럼 이스보셋과 다윗측에서 각각 열두 명의 군사를 출전시킨 것은 온 이스라엘, 즉 이스라엘 12 지파 전체의 지배권을 걸고서 싸운다는 의미에서였을 것이다.
사무엘 하 2장 16절
각기 상대방의 머리를 잡고 칼로 상대방의 옆구리를 찌르매 일제히 쓰러진지라 그러므로 그곳을 헬갓 핫수림이라 일컬었으며 기브온에 있더라
머리를 잡고 … 옆구리를 찌르매
원문을 그대로 직역하면, ‘각자가 상대의 머리를 잡고 그리고 그의 칼은 상대의 옆구리에’이다. 즉 원문에는 ‘찌르매’라는 동사가 없다. 이는 곧 당시의 처절한 싸움의 상황을 회화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각자가 상대의 머리를 잡음과 동시에 아주 날렵하게 상대방의 옆구리를 찔렀음을 보여준다(Keil, Lange, Pulpit Commentary).
일제히 쓰러진지라
‘일제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흐다우’는 ‘함께, 똑같이’란 의미이다. 구약에서 이 말은 (1) 행동의 일치(신 25:11), (2) 시간의 일치(시 4:8)를 의미할 때 사용되었다. 그런데 여기서의 이 말이 두 번째 경우인 시간의 일치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들이 다 똑같은 상처를 입고 똑같은 시간에 쓰러져 죽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말은 그들이 모두 상처를 입고 죽었다는 의미로서 행동의 일치를 나타내는 것임이 분명하다. 아무튼 이 말에서 우리는 그날에 대표로 나온 24명의 용사들이 (1) 방어 무기(방패 등)도 없이 싸웠고 (2) 아주 치열하게 싸웠음을 알 수 있다. 사실 그들이 양손에 칼과 방패 따위를 들고 있었다면 상대방의 머리를 잡을 수 없을 것이다(Pulpit Commentary).
헬갓 핫수림
이는 ‘헬갓’과 ‘핫수림’이 합해진 복합 명사이다. 이 중 ‘헬갓’은 ‘들’(field)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해석의 초점은 두 번째 단어 ‘핫수림’에 있다. 왜냐하면 ‘핫수림’은 ‘추르’의 복수형으로 이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1) ‘옆구리’로 보는 견해(공동번역). 이 견해를 따르면 ‘헬갓 핫수림’은 ‘옆구리들의 들’이 된다. (2) ‘음모자’로 보는 견해(LXX). 이에 의거해서 데니우스(Thenius) 같은 이는 ‘헬갓 핫수림’을 ‘모해자들의 들’로 해석한다(Lange). (3) ‘반석’으로 보는 견해(Vulgate). 이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은 반석이 ‘강함’을 의미한다는 사실에 근거해 ‘헬갓 핫수림’을 ‘강한 자들의 들’로 해석한다(Patrick). (4) ‘날카로운 칼날’로 보는 견해(Dake, Keil & Delitzsch, Lange, Pulpit Commentary). 그 근거로서 첫째는 ‘추르’가 대부분 ‘반석’이라는 의미를 갖지만, 시 89:43에서 ‘날카로운 칼날’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둘째, 이러한 의미는 칼날에 찔려 소년들이 모두 죽은 본문의 사건과도 매우 부합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한편 이상과 같은 네 가지 견해 중 처음 세 견해는 그 근거가 불충분할 뿐 아니라 본문과도 잘 부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네 번째 견해에 근거해 ‘헬갓 핫수림’을 ‘날카로운 칼날들의 들’로 해석하는 것이 비교적 무난할 것이다.
사무엘 하 2장 17절
그 날에 싸움이 심히 맹렬하더니 아브넬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의 신복들 앞에서 패하니라
싸움이 심히 맹렬하더니
선택된 24명의 용사들이 승부를 가리지도 못한 채 모두 죽자(16절) 피를 본 양측의 군사들이 자극을 받아 전면전에 돌입하게 된 것을 가리킨다. 특히 여기서 ‘맹렬하다’에 해당하는 ‘카솨’는 ‘잔혹하다, 단단하다’는 뜻으로 전쟁의 참혹성을 말해 준다.
사무엘 하 2장 18절
그곳에 스루야의 세 아들 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이 있었는데 아사헬의 발은 들노루 같이 빠르더라
스루야
이름의 뜻은 ‘분열됨’으로 다윗의 누이이다(대상 2:16). 유대인의 관습에 따르면,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그 계대(係代)를 말하게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 절에서 요압, 아비새, 아사헬이 ‘스루야의 아들’로 기록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1) 스루야가 특별히 뛰어난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2) 스루야가 일찍 남편을 사별했기 때문이다(Pulpit Commentary). (3) 요압, 아비새, 아사헬과 다윗과의 친분 관계를 보다 강조하기 위함이다.
요압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아버지이심’이다. 요압은 다윗 왕조의 중심 인물이며 또한 본서에 빈번히 등장한다. 그는 다윗의 조카로서 다윗이 왕이 되기 전부터 다윗을 추종했으며, 이스라엘의 통치 영역을 확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10:6-19, 11:1, 12:26, 왕상 11:15-16). 그러나 그는 이중 인격자의 성질을 가진 자로서 한편으로는 다윗을 심히 괴롭히기도 했다. 즉, 그는 다윗을 위해 시온 성을 쌓는 데 협력하는(대상 11:8) 등 많은 충성을 하였으면서도(14:23, 31-33, 18:14-33), 한편으로는 다윗이 죽이지 말라고 부탁, 또는 명령한 압살롬, 아마사, 아브넬 등을 교묘한 꾀를 써서 살해하였다(3:27, 18:14, 20:10). 이러한 사실은 그가 진정으로 다윗 왕조를 위하는 진실된 마음으로 충성했던 것이 아니라 다분히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이나 야망으로 행동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까닭에 다윗은 그를 미워하고 경계하게 되었다. 결국 요압은 이러한 자기의 기질로 인해 솔로몬의 군대 장관 브나야에게 살해당하고 만다(왕상 2:31-35). 우리는 요압의 이와 같은 행동을 통해 한 가지 교훈을 얻게 된다. 그것은 곧, 참된 충성이란 많은 일을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기질과 욕망을 버리고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데 있다는 사실이다.
아비새
‘선물의 아비’란 뜻이다. 아비새 역시 형 요압과 함께 일생 동안 다윗 왕조에 충성을 다 하였다(17:25, 대상 2:16). 그는 요압과 더불어 다윗 군대의 유력한 장군이 되어(10:9-10) 압살롬의 반역을 평정하며(18:1-15) 다윗의 목숨을 구하는 등(21:15-17) 많은 공을 세웠다. 특히 그는 혼자서 창으로 삼백 명의 적군을 무찌른 일로 유명하다(23:18, 대상 11:20).
아사헬
‘하나님께서 만드심’이란 뜻이다. 요압과 아비새의 동생으로서 다윗의 30 용사 중 한 사람이다(23:24). 다윗의 군대 장관이었기도 한 그는(대상 27:7) 특히 발이 빠르기로 유명하였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이스보셋의 군장(軍長) 아브넬에게 살해당하는 불운을 겪는다(23절).
사무엘 하 2장 19절
아사헬이 아브넬을 쫓아 달려가되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아브넬의 뒤를 쫓으니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이 말은 ‘한눈 팔지 아니하고, 오직’이란 뜻이다. 후퇴하는 적의 패장(敗將)을 처치한다는 것은 용사로서 매우 큰 공을 세우는 것이다. 따라서 아사헬은 다른 데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아니하고 오직 아브넬의 뒤만을 쫓았다.
사무엘 하 2장 20절
아브넬이 뒤를 돌아보며 이르되 아사헬아 너냐 대답하되 나로라
사무엘 하 2장 21절
아브넬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왼쪽으로나 오른쪽으로나 가서 청년 하나를 붙잡아 그의 군복을 빼앗으라 하되 아사헬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그의 뒤를 쫓으매
청년 하나를 붙잡아 그의 군복을 빼앗으라
여기서 ‘군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할리차’는 본래 싸움에서 승리하고 얻는 ‘전리품’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브넬의 이와 같은 말은 다른 데로 가서 공을 세우라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Keil & Delitzsch, Matthew Henry). 더 나아가 이 말속에는 ‘아사헬, 너는 나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사무엘 하 2장 22절
아브넬이 다시 아사헬에게 이르되 너는 나 쫓기를 그치라 내가 너를 쳐서 땅에 엎드러지게 할 까닭이 무엇이냐 그렇게 하면 내가 어떻게 네 형 요압을 대면하겠느냐 하되
내가 어떻게 네 형 요압을 대면하겠느냐
아브넬의 이 같은 말은 아사헬과의 싸움을 피하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 즉 아브넬은 행여라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아사헬이 다치거나 죽는 것을 염려한 것이다. 그러나 그와 관련하여 아브넬이 굳이 요압을 언급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때문에 학자들마다 견해를 달리하고 있는데 곧 다음과 같다. (1) 전에 아브넬과 요압은 친구 관계였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즉, 다윗이 사울 왕의 핍박으로 인해 도피하기 이전에는 이들이 서로 군대의 동료로서 우정을 나누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Keil). (2) 아브넬이 대세가 다윗 측에게로 기우는 것을 확인한 후 앞으로 자신이 요압의 세력 하에 들어가게 될 때 그 후환을 염려하여 이 같은 말을 하였을 것이라는 주장이다(Pulpit Commentary, Rust, Matthew Henry). (3) 아브넬이 요압의 사나운 성질을 잘 알고 있어서 그의 복수가 있을 것을 염려하여 이같이 말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Lange). 그런데 이러한 주장들은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이 추측들 모두가 가능성이 없는 것들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 가지 견해들을 종합하여 본 절을 해석하는 것이 가장 무난할 것이다.
사무엘 하 2장 23절
그가 물러가기를 거절하매 아브넬이 창 뒤 끝으로 그의 배를 찌르니 창이 그의 등을 꿰뚫고 나간지라 곧 그곳에 엎드러져 죽으매 아사헬이 엎드러져 죽은 곳에 이르는 자마다 머물러 섰더라
그가 물러나기를 거절하매
이로 보아 아사헬은 자신의 빠른 걸음만을 믿고서 만용을 부렸음이 분명하다. 만일 그가 사리를 분별할 줄 알았더라면 아브넬이 자신보다 뛰어난 백전노장임을 깨닫고 그의 충고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창 뒤 끝으로 … 찌르니
이것을 보아 아브넬이 아사헬을 죽일 마음은 없었음이 분명하다. 그는 그저 아사헬이 쫓아오지 못하도록 하려고 창 뒤 끝으로 찔렀다(Hertzberg, Lange).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사헬이 죽은 것은 아마 (1) 창의 뒤 끝에 금속 종류가 부착되어 있었거나(Lange, Pulpit Commentary), (2) 아사헬의 달려옴이 너무나 빨랐기 때문일 것이다(Matthew Henry).
엎드러져 죽으매
이처럼 18절에서부터 본 절에 이르기까지 아사헬의 죽음이 상세히 묘사되고 있다. 아마 이는 훗날 요압에 의해 아브넬이 살해당한 이유가 바로 이 아사헬의 죽음 탓이었음을 분명히 밝히기 위함인 듯하다(3:27, 30).
사무엘 하 2장 24절
요압과 아비새가 아브넬의 뒤를 쫓아 기브온 거친 땅의 길 가 기아 맞은쪽 암마 산에 이를 때에 해가 졌고
기아 맞은쪽 암마 산
‘기아’의 뜻은 ‘폭포’ 또는 ‘솟는 샘’이다. 그러나 그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베냐민 땅, 기브온 광야의 어느 한 지점인 것으로 추측되는 데 사람들이 쉬면서 목을 축일 수 있는 샘이나 개울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암마 산’ 역시 기브온 광야에서 요단 강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사무엘 하 2장 25절
베냐민 족속은 함께 모여 아브넬을 따라 한 무리를 이루고 작은 산 꼭대기에 섰더라
베냐민 족속
당시 기브온에 정착하고 있던 베냐민 지파로서 이스보셋을 추종하던 세력이다(9절). 이들은 마침 기브온 못을 확보하기 위하여 군사를 이끌고 나아왔던 아브넬과 합세하였을 것이다(12, 15절). 그런데 이처럼 이들이 그 어느 지파보다도 적극적으로 이스보셋과 아브넬을 추종하였던 까닭은 아마 사울 가문이 자신과 같은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삼상 10:17-24).
사무엘 하 2장 26절
아브넬이 요압에게 외쳐 이르되 칼이 영원히 사람을 상하겠느냐 마침내 참혹한 일이 생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언제 무리에게 그의 형제 쫓기를 그치라 명령하겠느냐
칼이 영원히 사람을 상하겠느냐
이 말은 ‘계속해서 칼로 죽여야만 하겠느냐’는 뜻이다. 즉 아브넬은 ‘이제 피 흘리는 싸움을 그만 두자’고 휴전 제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참혹한 일이 생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참혹한 일’에 해당하는 ‘마라’는 ‘괴로움, 불미스러움, 쓴 맛’ 등의 뜻으로서 여기서는 양측 모두 전멸하고 마는 ‘비극’을 의미한다. 때문에 불가타 역(Vulgate)은 이를 ‘목숨 걸고 싸우는 일이 얼마나 절망적인 것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로 번역하고 있다(Lange, Pulpit Commentary).
형제 쫓기를 … 명령하겠느냐
지금 대진해 있는 군사들이 형제들, 곧 같은 민족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넬의 간교성과 다급함을 엿볼 수 있다. 즉 먼저 동족 간의 싸움을 제의하고 피 흘리기를 좋아하였던 그가(14절) 이제 전세(戰勢)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동족애에 호소하여 휴전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로써 휴전이 성립되게 된 것은 지극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는 곧 장차 다윗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려 계획하고 계신 하나님(5:1-5)의 간섭하심의 결과였음이 분명하다.
사무엘 하 2장 27절
요압이 이르되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무리가 아침에 각각 다 돌아갔을 것이요 그의 형제를 쫓지 아니하였으리라 하고
네가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아브넬이 무슨 말을 했기에 요압의 책망을 받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14절에서 발견된다. 즉 요압은 기브온 전투의 참혹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아브넬의 전쟁 제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Keil & Delitzsch, Lange, Matthew Henry, Pulpit Commentary).
아침에 각각 다 돌아갔을 것이요
즉 아브넬의 전쟁 제의만 없었더라면 기브온 못가로 나아왔던 양측의 군사들(13절)이 서로 화해하는 가운데 당일 아침에 각기 처소로 돌아갔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Lange).
사무엘 하 2장 28절
요압이 나팔을 불매 온 무리가 머물러 서고 다시는 이스라엘을 쫓아가지 아니하고 다시는 싸우지도 아니하니라
나팔을 불매 … 싸우지도 아니하니라
이처럼 요압이 아브넬의 휴전 제의를 받아들여 퇴각 나팔을 불고 싸움을 중지시킨 것은 아마 다윗을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즉 동족 간의 무모한 피 흘림을 계속하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한을 초래하는 것은 분명 장차 온 이스라엘을 통치하여야 할 다윗에게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이었다. 그러므로 비록 성질 급한 요압이었기는 하지만 이를 고려, 일단 싸움을 중지시켰을 것이다(Matthew Henry, Pulpit Commentary).
사무엘 하 2장 29절
아브넬과 그의 부하들이 밤새도록 걸어서 아라바를 지나 요단을 건너 비드론 온 땅을 지나 마하나임에 이르니라
아라바
본래는 요단 강 상류의 헤르몬 산으로부터 갈릴리 호수, 요단 계곡, 사해를 통하여 아카바 만에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침식지(浸蝕地)를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얍복 강이 흘러들어 오는 요단 강 일대의 계곡 지대를 가리킨다.
비드론 온 땅
‘비드론’의 뜻은 ‘협곡’ 또는 ‘갈라진 틈’이다. 이로 보아 ‘비드론 온 땅’이란 요단 강 동편의 한 골짜기 일대를 가리키는 듯하다.
사무엘 하 2장 30절
요압이 아브넬 쫓기를 그치고 돌아와 무리를 다 모으니 다윗의 신복 중에 열아홉 명과 아사헬이 없어졌으나
없어졌으나
이에 해당하는 ‘파카드’는 ‘빠뜨리다, 빠지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전사(戰死)하여 생존자의 수에서 빠진 것을 의미한다.
사무엘 하 2장 31절
다윗의 신복들이 베냐민과 아브넬에게 속한 자들을 쳐서 삼백육십 명을 죽였더라
삼백육십 명을 죽였더라
다윗 측의 전사자 수가 이십 명인 것에 비교하면 엄청난 수이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요압의 뛰어난 전술과 그 휘하 용사들의 용맹성에서 기인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아브넬 휘하의 베냐민인들 역시 호전적(好戰的)이고 싸움에 능한 자들이었던 점(창 49:27)에 비추어 볼 때 이 역시 이스보셋 왕가(8-10절)를 쇠퇴하게 하고 대신 다윗 왕조를 굳건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임이 분명하다.
사무엘 하 2장 32절
무리가 아사헬을 들어 올려 베들레헴에 있는 그의 조상 묘에 장사하고 요압과 그의 부하들이 밤새도록 걸어서 헤브론에 이른 때에 날이 밝았더라
베들레헴에 … 장사하고
베들레헴은 기브온에서 남쪽으로 약 20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요압은 헤브론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사헬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 지내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그의 조상 묘
요압, 아비새, 아사헬의 아버지 곧 스루야의 남편이 젊은 나이에 죽었음을 증거해 주는 구절이다. 18절 주석 참조. 그런데 그 이름이 언급되지 않고 있음은 별다른 명성을 얻지 못한 채 젊은 나이에 죽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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