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하 3장 1절부터 16절까지의 말씀은, 다윗의 집과 사울의 집 사이의 세력이 역전되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다윗의 집은 점점 강하여지고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주석을 참고하여 개역개정 성경으로 읽고 묵상하였습니다.
사무엘 하 3장 1절-16절, 주석 및 해설 정리
사무엘 하 3장 1절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저자는 이스보셋의 권세가 쇠하고 다윗의 권세가 흥하는 중요한 시점에서 다윗과 이스보셋의 대립을 다윗 가와 사울 가의 대립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와 같은 대조적 묘사는 이스보셋의 쇠퇴와 다윗의 흥왕이 보다 근원적인 데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리기 위한 의도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저자는 점점 더해가는 이스보셋의 쇠퇴는 바로 사울 왕의 교만한 죄의 결과이며(삼상 13:8-14, 15:10-31), 다윗 왕의 점진적인 흥왕은 사울 왕의 핍박 속에서 인내한 다윗의 신앙의 결과(삼상 20:1-16) 임을 보여 주기 위해 이 두 이름을 대조시킨 것이다.
전쟁이 오래매
여기서 전쟁은 실제적인 전투를 의미하기보다는 양측이 서로 적대 관계를 형성하고 대치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듯하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이러한 적대 관계는 이스보셋이 자기 부하들에게 의해 암살 당하기까지 계속되었음이 분명하다(4:5-12).
다윗은 점점 강하여 … 약하여 가니라
이스보셋을 추종하던 자들이 점차 다윗에게로 돌아와 그를 지지하기 시작한 것을 의미한다(Lange, Matthew Henry). 대상 12:23-27에 의하면 이 같은 현상은 이스라엘 12 지파에 걸쳐 거족적(擧族的)으로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아무튼 사울 집안과 다윗 집안의 이러한 대조적 현상은 이 땅에 존재하는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 간의 긴장 및 대립, 확장과 퇴락을 예시해 주기에 충분하다. 즉 이 두 세력은 항상 긴장 대립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으나(벧전 5:8-9), 최종적으로는 하나님 나라가 악의 세력을 누르고 이 땅에서 흥왕 하게 된다(마 13:24-30, 36-43).
사무엘 하 3장 2절
다윗이 헤브론에서 아들들을 낳았으되 맏아들은 암논이라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의 소생이요
다윗이 … 아들들을 낳았으되
본 절 이하에 언급된 다윗의 아들들은 이후 다윗 가문에 피비린내 나는 비극을 연출한다. 이는 분명 다윗의 다처(多妻) 행위에서 기인된 것으로, 일부일처의 가정 질서가 파괴된 결과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경고해 주기에 충분하다.
암논
이복 누이 다말을 강간한 탓에 그 오빠 되는 압살롬에게 살해당하고 마는 패륜아이다(13장).
아히노암
다윗이 사울의 딸 미갈과 이별한 후 맞아들인 아내이다(삼상 25:43). 다윗은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에게 피신할 때 그녀를 데리고 갔었다(삼상 27:3). 2:2 주석 참조.
사무엘 하 3장 3절
둘째는 길르압이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의 소생이요 셋째는 압살롬이라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이요
길르압
길르압은 대상 3:1에서 ‘다니엘’(Daniel)로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암논과 압살롬이 죽은 후 넷째 아들 아도니야가 다윗의 장남 행세를 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왕상 1:5-10) 그도 일찍 죽은 것 같다(Pulpit Commentary).
아비가일
압살롬
암논을 살해하고 다윗에게 반역을 일으켰다가 요압의 손에 죽고 만 비극적인 인물이다(13-18장).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
‘그술’은 요단 강 상류의 동쪽 지경에 위치하고 있던 작은 독립국으로(수 13:13), 당시 다윗 왕가와는 우호 관계를 맺고 있었다. 따라서 다윗은 이 나라의 공주 마아가와 정략결혼을 한 셈인데, 그 결과는 오히려 훗날 큰 반역을 일으킬 압살롬을 낳게 된 것이다. 즉 어떤 이유에서든 아내를 많이 거느리는 것은 명백히 율법에 위배되는 행동으로서(신 7:3, 17:17), 그는 이 일로 인해 마침내 큰 곤욕을 치르게 된다(15장).
사무엘 하 3장 4절
넷째는 아도니야라 학깃의 아들이요 다섯째는 스바댜라 아비달의 아들이요
아도니야
훗날 이복동생 솔로몬과 왕위 쟁탈전을 벌이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비정한 인물이다(왕상 1:5-2:25).
스바댜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심판하셨다’이다. 이드르암(5절)과 더불어 그 행적은 달리 알려진 것이 없다.
사무엘 하 3장 5절
여섯째는 이드르암이라 다윗의 아내 에글라의 소생이니 이들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자들이더라
다윗의 아내 에글라
여기서 오직 에글라의 이름 앞에만 ‘다윗의 아내’란 칭호가 붙어있기 때문에 에글라가 다윗의 본처 미갈의 다른 이름이라고 해석하는 이들이 있다(Rabbins, Thenius). 그러나 이 견해는 미갈이 죽을 때까지 자식을 낳지 못했다는 점에서 옳지 않다(6:23). 다만 이 칭호는 아마도 다윗의 아내들에 대한 소개를 이제 마감한다는 의미에서 사용되었을 것이다(Keil, Lange). 한편, 삼상 25:42-43에서는 아히노암이나 아비가일을 모두 다윗의 아내로 호칭하고 있으며 12:24에서도 밧세바를 역시 다윗의 아내라고 부르고 있다. 따라서 이 말을 다윗의 첩들과 본처를 구분하는 말로 보는 견해 역시 적절하지 못하다.
사무엘 하 3장 6절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있는 동안에 아브넬이 사울의 집에서 점점 권세를 잡으니라
아브넬이 사울의 집에서 점점 권세를 잡으니라
아브넬이 이스라엘 내의 실권자가 됨을 의미한다. 사실 사울 왕가가 계속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브넬의 군사력 때문이었다(2:8-9). 따라서 그가 사울 왕가의 실권을 장악하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시 체제에서 군부가 권력을 잡게 되는 것은 보편적 현상이다. 이러한 정치 판도는 앞으로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비로소 신정 국가를 이루는 데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왜냐하면 사울 가문의 실권자 아브넬의 죽음(27절)은 곧 사울 가문의 몰락을 의미하였기 때문이다(Matthew Henry). 따라서 이러한 정치적 변화는 이스라엘의 배후에서 활동하신 하나님의 역사의 결과였음을 알 수 있다.
사무엘 하 3장 7절
사울에게 첩이 있었으니 이름은 리스바요 아야의 딸이더라 이스보셋이 아브넬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내 아버지의 첩과 통간하였느냐 하니
첩
당시 첩(妾)은 그 주인의 합법적인 재산이었다. 그리고 왕이 재위 중 첩을 소유하는 것은 하나의 특권이었다(Lange). 물론 이스라엘의 왕의 경우는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금지하고 계시지만(신 17:17), 고대 동양에서 이는 보편적 현상이었다.
리스바
이름의 뜻은 ‘타는 숯’이다. 훗날 그녀는 사울의 죄과로 인하여 두 아들을 잃는데, 시신을 극진히 돌본 그녀의 정성은 다윗을 감동시켰다(21:1-14).
네가 어찌하여 … 통간하였느냐
이스보셋이 아브넬에게 이같이 힐문한 것은 단순히 도덕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은 오히려 정치적인 성격의 문제였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왕의 첩을 차지한다는 것은 곧 그 왕의 후계자가 되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16:22, 왕상 2:17). 따라서 이스보셋의 이와 같은 힐문은 아브넬의 정치적인 부상(浮上)을 염려한 나머지 나온 말이었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사무엘 하 3장 8절
아브넬이 이스보셋의 말을 매우 분하게 여겨 이르되 내가 유다의 개 머리냐 내가 오늘 당신의 아버지 사울의 집과 그의 형제와 그의 친구에게 은혜를 베풀어 당신을 다윗의 손에 내주지 아니하였거늘 당신이 오늘 이 여인에게 관한 허물을 내게 돌리는도다
내가 유다의 개 머리냐
유대인들은 개를 경멸의 대상으로 보았다(출 22:31, 삼상 17:43, 24:14, 왕하 8:13, 시 22:16, 20). 왜냐하면 그들은 의식법(儀式法)상 사체(死體)에 닿기만 해도 부정하다고 생각하였는데, 개는 썩은 고기나 시체를 먹는 동물로 여겼기 때문이다(왕상 4:11, 16:4, 21:23, 왕하 9:10). 따라서 ‘개의 머리’란 ‘하찮은 사람, 형편없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결국 본 절은 ‘내가 유다 편에 선 반역자, 곧 형편없는 사람이냐’는 뜻임을 알 수 있다.
내가 오늘 … 내주지 아니하였거늘
아브넬이 애초부터 이스보셋에게 반역할 의사가 없었다는 사실을 강하게 주장하는 내용이다. 결국 아브넬의 이 같은 주장은 사울 왕의 첩 리스바를 취한 일에 대한 변명이다. 즉, 자신이 왕위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리스바를 취했던 것이 아니라 단순히 애정 때문에 취했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러한 일은 자기가 그동안 사울 가에게 보여 준 충성에 비하면 아무 문제도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허물을 내게 돌리는도다
양심이 마비된 자의 소리이다. 왜냐하면 이는 자신이 이스보셋 정권의 실질적 권력자로서 자신의 어떠한 행동도 정당하다는 패역한 생각을 드러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무엘 하 3장 9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신 대로 내가 이루게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아브넬에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
9절 전체
아브넬이 이스보셋 앞에서 그를 배반하고 다윗을 따르겠다고 하는 충격적인 선언이다. 즉 아브넬은 자신이 이스보셋에게 반역자로 간주될 바에야 차라리 이스라엘 전체를 다윗의 휘하에 들어가게 만들겠다고 호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아브넬의 돌변하는 태도를 볼 때, 우리는 그가 이스보셋을 옹립하여 정부를 수립한 것(2:8-10)은 사울 왕가에 대한 충성심이나 애국심에서가 아니라, 단지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괴뢰 정부를 수립한 것에 불과했다는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아무튼 이제 이스보셋과 대립하게 된 아브넬은 다윗 휘하에 들어가 자신의 생명과 지위를 유지하려 꾀한다(Leon Wood, Smith). 그러나 그의 계획은 요압에 의해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27절). 이상과 같은 사건을 통해 두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첫째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여호와 시라는 점이다(잠 16:9). 둘째는,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결국 패망이라는 점이다(시 1:6).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직접 맹세하신 것에 대한 성경적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아마 이는 하나님께서 사울 왕가의 패망과 관련하여 주신 말씀(삼상 15:28-29)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하나님의 약속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던 듯하다. 왜냐하면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과 같은 한 시골 여인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삼상 25:28) 때문이다(Lange).
사무엘 하 3장 10절
그 맹세는 곧 이 나라를 사울의 집에서 다윗에게 옮겨서 그의 왕위를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에 세우리라 하신 것이니라 하매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 세우리라
여기서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란 말은 가나안 땅 전역을 가리키는 관용적 표현이다(24:2, 삿 20:1, 삼상 3:20, 대상 21:2, 대하 30:5). 따라서 이는 다윗의 왕권을 온 이스라엘 위에 확립하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은 이스보셋 사후(死後),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왕으로 등극함으로써 실제로 성취되었다(5:1-5).
사무엘 하 3장 11절
이스보셋이 아브넬을 두려워하여 감히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니라
이스보셋이 … 감히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니라
당시 이스보셋이 명색만 왕이었을 뿐 아무런 권력도 지니지 못한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음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만일 이스보셋에게 실제적 통수권이 있었다면 그는 자신에게 공식적으로 반역을 선포하고 나선 아브넬에게 대한 체포 명령을 그 즉시로 내렸을 것이다(Pulpit Commentary).
사무엘 하 3장 12절
아브넬이 자기를 대신하여 전령들을 다윗에게 보내어 이르되 이 땅이 누구의 것이니이까 또 이르되 당신은 나와 더불어 언약을 맺사이다 내 손이 당신을 도와 온 이스라엘이 당신에게 돌아가게 하리이다 하니
이 땅이 누구의 것이니이까
아브넬의 이 말에는 복선이 깔린 이중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즉 이 말의 표면적 뜻은 ‘이 모든 이스라엘의 땅은 바로 다윗 당신의 것입니다’이다(Keil & Delitzsch, Matthew Henry). 그러나 그 이면에는 ‘하지만 실제로 이스라엘 땅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아브넬입니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Lange, Pulpit Commentary). 즉 아브넬은 이 같은 말로써 다윗이 통일 왕국의 위업을 순조로이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내 손이 당신을 도와 … 돌아가게 하리이다
아마 아브넬은 이같은 제의를 통하여 다윗으로부터 적절한 보상과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으려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분명 다윗의 왕권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과 주권을 이해치 못한 행동이다. 즉 아브넬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사무엘 하 3장 13절
다윗이 이르되 좋다 내가 너와 언약을 맺거니와 내가 네게 한 가지 일을 요구하노니 나를 보러올 때에 우선 사울의 딸 미갈을 데리고 오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고
사울의 딸 미갈을 데리고 오라
이는 다윗이 아브넬과 화친을 맺는 조건으로 건네는 요구이다. 그런데 이처럼 다윗이 미갈을 자기에게 데려오라고 했던 이유에 대하여 혹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기도 한다. 즉 다윗이 정략적인 차원에서 다시 사울 왕의 딸과 결혼함으로써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였다는 견해이다(Keil, Hertzberg, Smith). 물론 우리는 그 같은 측면도 전혀 배제할 수 없지만, 거기에는 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곧 다윗이 아직도 미갈을 사랑하여 잊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Wycliffe). 왜냐하면 (1) 미갈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양피 백으로 정혼한 여인이며(14절), (2) 그녀는 사울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여인이었으며(삼상 18:20, 19:11), (3) 그녀 자신이 다윗을 사랑했음에도(삼상 18:27, 19:11-12) 정치적인 이유로 지금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삼상 25:44). 아무튼 다윗이 다시 미갈을 되찾게 된다면 그것은 곧 사울에 의해 부당하게 박탈된 자신의 공적 권리와 신분을 회복하게 된다는 의의를 지닌다(Lange, Pulpit Commentary).
사무엘 하 3장 14절
다윗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 전령들을 보내 이르되 내 처 미갈을 내게로 돌리라 그는 내가 전에 블레셋 사람의 포피 백 개로 나와 정혼한 자니라 하니
이스보셋에게 전령들을 보내어
다윗이 사울 왕가를 대표하고 있는 이스보셋에게 정식으로 사절단을 파송한 것을 가리킨다. 즉 다윗은 아브넬과 이미 밀약을 맺은 상태이지만, 어디까지나 정식 외교 절차를 밟아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려 한 것이다.
블레셋 사람의 포피 백 개로 나와 정혼한 자니라
전에 사울은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의해 다윗을 죽일 목적으로 블레셋 사람의 포피 백 개를 폐백 대신 요구한 적이 있었다(삼상 18:25). 그런데 오히려 다윗은 쉽게 블레셋 인들을 치고 그 포피를 갖다 바친 후 사울의 딸 미갈을 아내로 취하였으니(삼상 18:27), 바로 그 사건을 뜻한다.
사무엘 하 3장 15절
이스보셋이 사람을 보내 그의 남편 라이스의 아들 발디엘에게서 그를 빼앗아 오매
이스보셋이 사람을 보내 … 빼앗아 오매
이는 이스보셋이 자의로 행한 행위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지금 자기의 왕위를 위태롭게 하고 있는 원수인 다윗의 요구를 자기 스스로 들어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보셋이 이와 같이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아브넬의 협박 때문이었다. 즉 다윗이 아브넬과 언약을 맺는 조건으로 미갈을 데려오라는 요구를 하였는 바(13절), 이에 아브넬이 이스보셋에게 압력을 가하였음이 분명하다.
발디엘
삼상 25:44에는 ‘발디’로 나와 있다. ‘발디’의 뜻은 ‘여호와가 구원하시다’ 또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이다. 그런데 여기서 ‘엘이 구원하시다’란 뜻인 ‘발디엘’로 불리고 있음은 다음과 같은 까닭에서 일 것이다. 즉 ‘발디’는 ‘발디아’의 축약형이며, ‘야훼’에 해당하는 ‘아’가 또 다른 신명(神名)인 ‘엘’에 해당하는 ‘엘’로 바뀌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Pulpit Commentary).
사무엘 하 3장 16절
그의 남편이 그와 함께 오되 울며 바후림까지 따라왔더니 아브넬이 그에게 돌아가라 하매 돌아가니라
그의 남편이 … 울며 … 따라왔더니
다윗이 자신의 아내 미갈을 발디엘에게 빼앗긴 것은 그 때로부터 적어도 10여 년 전의 일로 추정된다(삼상 25:44). 따라서 그동안 발디엘은 미갈에게 깊은 정(情)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미갈이 다윗에게로 되돌아가게 된 것에 대하여 발디엘은 간장이 끊어지는 듯한 격한 슬픔에 울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자신이 뿌린 씨앗을 스스로 거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다윗 역시 자신의 아내 미갈을 빼앗겼을 때 발디엘과 똑같은 고통을 당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 발디엘은 미갈이 다윗의 아내였음을 알고 있었을 터이니, 처음부터 미갈을 취하지 않았어야 옳았다(Matthew Henry’s Commentary).
바후림
베냐민 지파의 한 성읍으로 예루살렘 동북쪽 근교에 위치하였다. 훗날 다윗을 저주한 시므이의 고향이자(16:5), 다윗의 첩자인 요나단과 아히마아스가 압살롬을 피해 그곳 우물에 숨었던 곳이기도 하다(17:17-20).
아브넬이 그에게 돌아가라 하매
아마 아브넬은 다윗의 심경(心境)을 고려하여 발디엘이 베냐민 지경을 넘어 유다 지파의 땅에 들어서는 것을 허용치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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