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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보며 성경 읽기/10 사무엘 하

사무엘 하 7장 1절-7절, 주석 및 해설 정리

사무엘 하 7장 1절부터 7절까지의 본문은,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짓고자 결단하는 다윗과 성전 건축을 반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마음을 기쁘게 받으시는 본문을 개역개정 성경으로 통독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석 및 해설을 참고하며 매일 성경 큐티를 하였습니다.

 

사무엘 하 7장 1절-7절, 주석 및 해설 정리
사무엘 하 7장 1절-7절, 주석 및 해설 정리

 

 

사무엘 하 7장 1절-7절, 주석 및 해설 정리

 

 

사무엘 하 7장 1절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 살게 하신 때

본 절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 유명한 다윗 언약(4-17절)을 주신 때가 다윗 통치 말기임을 보여 준다. 즉 본 절에서 가리키는 때는 (1) 다윗이 주위의 모든 원수들을 무찔렀을 때인데 여기에서 주위의 모든 원수는 블레셋(5:17-25, 8:1) 뿐만 아니라 여러 이방 족속(8:2-14)을 의미하므로 그때는 분명히 다윗 통치의 말기이다. (2) 또한 그때는 다윗이 백향목으로 지은 예루살렘 궁에 거했을 때(2절)인데 이때는 두로의 히람 왕과 교류가 있었던 때(5:11)이므로 이러한 사실 역시 다윗의 통치 말기임을 입증해 준다. 5:11 주석 참조. 따라서 본 장은 사실상 8장 이하의 내용보다 더 나중에 있었던 사실에 대한 기록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본서가 연대기적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주제별로 일관된 흐름을 따라 기록된 것임을 보여 준다(Keil, Lange, Pulpit Commentary).

 

 

사무엘 하 7장 2절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선지자 나단

나단(Nathan) 선지자는 다윗과 솔로몬 양대에 걸쳐 크게 활동한 선지자이다. 그는 본 장의 다윗 언약 뿐만 아니라 밧세바와 다윗의 간음 사건, 솔로몬의 등극 등에 깊이 관여하였다(12:1-15, 왕상 1:8-30, 32, 39, 45). 또한 그는 성전 예배에 있어서 음악을 장려하였고(대하 29:25), 다윗과 솔로몬의 행적을 기록하기도 하였다(대상 29:29, 대하 9:29).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예루살렘 정복(5:6-10) 및 주위 대적들을 모두 제압한 때에 다윗은 두로 왕 히람으로부터 호의를 입었다. 그것은 곧 히람이 다윗을 위해 예루살렘에 백향목 궁을 지어 준 것이었다. 이후 다윗은 그곳에서 살게 되었는데 본 절은 바로 그 일을 가리킨다(5:11).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여기에서 휘장(curtains)은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수놓은 10폭의 휘장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으로 성막 전체를 덮었다(출 26:1, 36:8). 다윗은 이처럼 천으로 덮여 있는 성막 속에 여호와의 궤가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였다(시 69:9).

 

 

사무엘 하 7장 3절

 

나단이 왕께 아뢰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하니라

 

3절의 개요

본 절의 나단 선지자의 말 중, 전반부는 옳았지만 후반부는 그렇지 않았다. 즉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신다는 말은 사실이었지만(9절, 5:10, 삼상 16:18, 18:12) 다윗이 하려 한 성전 건축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5, 6, 13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나단의 이와 같은 말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 한 말이 아니었고 단지 자기 생각을 피력한 것에 불과하였다(Keil, Lange). 즉, 그는 다윗의 성전 건축에 대한 소원이 곧 하나님의 뜻에 부합될 줄로 알고 즉흥적으로 대답했다. 물론 일반적으로 볼 때 이러한 나단의 생각이나 말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에 앞장서거나 그에 협력하는 것은 성도의 당연한 본분이기 때문이다(고전 10:31). 그러나 이번 경우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사무엘 하 7장 4절

 

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밤에

나단이 다윗의 의견에 적극 동조한 바로 그 날(3절) 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나단의 그릇된 충언(忠言)을 즉각 시정해 주시기 위하여 이처럼 신속히 나단에게 계시하셨다(Matthew Henry’s Commentary).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아마도 나단은 꿈(민 12:6, 왕상 3:5)이나 이상(민 12:6, 단 2:19, 7:2, 13) 또는 직접적인 계시(창 26:24, 민 22:20, 삿 6:25-27, 삼상 3:1-21)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17절에서는 이것을 ‘계시’(vision)로 칭하고 있다.

 

 

사무엘 하 7장 5절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성전 건축과 관련된 당신의 뜻을 직접 다윗에게 계시하실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처럼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전달하도록 하신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1) 하나님의 뜻과 나단 선지자의 조언(3절) 간의 불일치로 인해 다윗이 당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대언(代言)하는 사명을 지닌 선지자들의 고유 직분을 존중하셨기 때문이다(Matthew Henry).

 

네가 … 건축하겠느냐

다윗의 성전 건축 의사를 분명히 반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같은 내용을 기록한 대상 17:4에서는 ‘너는 … 건축하지 말라’고 더욱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반대 이유를 대상 22:8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곧 다윗이 전쟁에서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 평화를 상징하는 성전을 건축할 자로서의 이미지는 아니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본 절의 하나님의 말씀은 성전을 건축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겠다는 다윗의 진실한 마음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이는 다만 아직 그 시기가 이르지 않았다는 말씀일 뿐이다. 이 같은 사실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에 이르러 성전 건축을 허락하신 것을 보면 알 수 있다(13절, 대상 17:12, 대하 3-6장).

 

 

사무엘 하 7장 6절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나니

 

6절의 개요

7절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다윗의 의사를 반대하는 구체적인 이유를 들려주고 있다. 그 이유는 곧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한번도 고정된 곳에 계시지 않았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여기저기 다니시며 이동용(移動用) 건축물에 계셔왔다는 사실이다.

 

내가 …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과거 430년 동안 종노릇 하였던 애굽 땅에서 건져 내셨던 역사적인 날을 가리킨다. 정통주의 학자들에 따르면 그날은 B.C. 1446년경 아빕월 15일이었다고 한다(출 12:41).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이트’는 (1) 어떤 재료로 만들어진 영구한 건축물(16:21, 창 19:2, 33:17), (2) 예배 장소, 또는 성전(출 23:19, 왕상 6:5), (3) 사람이 거하여 안식하는 장소(욥 17:13, 전 12:5) 등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영구히 거하시며 안식하시며 경배받으실 만한 견고한 건축물을 의미한다.

 

장막과 성막

장막(tent)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헬’은 ‘단순히 이동할 수 있는 임시 거주지’, 곧 천막을 의미한다(삼상 17:54, 대하 14:15). 반면 이와 달리 성막(tabernacle)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슈칸’은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 놓은 장막’을 의미한다. 즉 ‘미슈칸’의 동사형 ‘솨칸’은 본래 ‘자리 잡다, 앉다, 휴식을 취하다, 살다’란 뜻이다. 이렇게 볼 때 ‘미슈칸’의 의미는 하나님의 가시적 보좌, 곧 법궤가 자리 잡고 있는 장막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출 25:9, 민 1:50, 시 46:5, 84:2). 그러나 이와 같은 두 용어의 차이점은 본 절에서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본 절에서 중요한 것은 두 용어가 모두 이동용 거처를 가리킨다는 사실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고정된 집에 거하시지 않고 이동용 천막에 거해 오셨다는 사실이다. 아무튼 이와 같이 지극히 거룩하시고 존귀와 영광으로 가득 차신 여호와 하나님(대상 16:27, 겔 39:7)께서 화려한 장소에 계시지 않고 비천한 장소에서 거하셨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당신 백성들을 사랑하사 그들을 인도하시기 위해 인간의 수준으로 낮아지신 것을 의미한다.

 

 

사무엘 하 7장 7절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다니는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다니는

여기에서 ‘다니다’(히, 할라크)라는 말은 권능으로 이스라엘을 도우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모든 행사를 의미한다(Lange).

 

먹이라고

여기서 ‘먹이다’(히, 라아)는 말은 본래 목자가 가축을 돌보는 것을 의미한다(창 37:13, 민 14:33, 삼상 16:11). 따라서 이 말은 주권자가 백성을 다스리거나 하나님께서 당신 백성을 인도하는 사실을 묘사할 때에도 사용되었다(삼하 5:2, 시 23:1, 슥 10:2). 여기서도 이 말은 백성을 ‘통치하다, 지도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Keil).

 

이스라엘 어느 지파들

학자들은 본 절의 ‘지파’라는 말을 놓고서 서로 해석을 달리하고 있다. 즉 그들은 이 말에 대하여 상반된 견해를 보이고 있는데 곧 다음과 같다. (1) 지파를 사사로 보는 견해이다(Bertheau, Ewald, Thenius). 이러한 사람들의 주장은 본 절과 같은 내용을 기록한 대상 17:6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즉, 본 절의 ‘지파’(히, 쉬브테)라는 말이 대상 17:6에서는 ‘사사’(히, 쉬프테)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들은 본 절의 ‘지파’는 ‘사사’의 오기(誤記)라고 주장한다. (2) ‘지파’란 말을 그대로 지파로 보는 견해이다(Keil, Lange, Hengstenbery, Maurer). 이 견해에 따르면, 여기서 ‘어느 지파’란 다윗 이전에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단과 같은 지파들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상과 같은 두 견해 중 어느 것이 보다 정확한 해석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두 견해를 다 염두에 두고 본 절을 대하는 것이 보다 무난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사(士師)들 대부분이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단과 같은 지파 출신이기 때문이다.

 

백향목 집

‘백향목’(cedar)은 그 당시 최고급 건축 자재이며 궁궐과 성전을 짓는데 사용되었다. 5:11 주석 참조. 그리고 ‘집’(히, 바이트)은 이미 6절에서 나온 말로 영구히 거할 수 있는 견고한 구조물을 의미한다. 즉 다시 말하면, 이는 곧 궁궐이나 성전 따위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