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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보며 성경 읽기/10 사무엘 하

사무엘 하 1장 1절-16절, 주석 및 해설 정리

사무엘 하 1장 1절부터 16절까지는, 아말렉 청년이 다윗에게 와서 사울과 요나단의 전사 소식을 전하는 장면입니다. 청년은 자신이 사울을 죽였다고 보고하였지만 다윗에게 처형을 당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깊이 애도합니다. 사무엘 하 1장 1절부터 16절까지의 주석과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사무엘 하 1장 1절-16절, 주석 및 해설 정리
사무엘 하 1장 1절-16절, 주석 및 해설 정리

 

 

 

사무엘 하 1장 1절-16절, 주석 및 해설 정리

 

 

사무엘 하 1장 1절

 

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쳐죽이고 돌아와 다윗이 시글락에서 이틀을 머물더니

 

 

사울이 죽은 후

사무엘상, 하를 연결해 주는 의미 있는 구절이다(Cahen, Wordsworth). 랑게(Lange)는 이 문구가 2장에 나온 용례처럼(2:1, 그 후에) 단순히 내용의 흐름을 바꾸어 주는 보편적 형식으로서 사무엘상, 하와 구분점이 되는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구약 역사서 중 상당수가 ‘ … 가 죽은 후’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음을 보아(수 1:1, 삿 1:1, 왕하 1:1) 이 문구를 사무엘상, 하를 구분하는 기준점으로 삼는 것은 적절하다. 더욱이 이 문구에 의해 내용면에서 폭군 사울 왕의 시대와 성군 다윗 왕의 시대가 명확히 구분되는 것을 보아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사무엘상, 하가 히브리 성경에서는 한 권으로 되었을지라도 이 문구를 기준으로 구분한 것은 매우 적절하다.

 

다윗이 … 쳐죽이고

삼상 30:16-20의 사건을 가리킨다. 즉 앞서 다윗은 아기스와 함께 출전(出戰)하느라 잠시 시글락을 비워 둔 적이 있다. 그 때 아말렉 족속이 시글락을 침입, 다윗의 백성을 약탈하였는데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다윗은 그 뒤를 추격, 아말렉을 격파하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였다.

 

시글락

브엘세바 북서쪽 19.2 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이다. 원래 시므온 지파에게 배당 되었으나(수 19:5, 대상 4:30) 사울 시대에는 블레셋의 지배하에 있었다. 한편 가드의 아기스 왕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고 있을 때 시글락을 다윗에게 주어 외부의 적들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꾀하기도 하였다(삼상 27:6, 대상 12:1, 20). 즉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이 가드로 도망와 아기스 왕과 군사적 관계를 맺고 이 곳을 얻었다. 덕분에 다윗은 지금까지 이곳을 그의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세력을 확장하며 은거할 수 있었다(삼상 27:8-9, 30:26-30).

 

 

사무엘 하 1장 2절

 

사흘째 되는 날에 한 사람이 사울의 진영에서 나왔는데 그의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더라 그가 다윗에게 나아와 땅에 엎드려 절하매

 

사흘째 되는 날에

다윗이 아말렉 족속을 추격하여 그들을 격파하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시글락으로 돌아온 지(삼상 30:16-20) 사흘째 되는 날을 가리킨다.

 

사울의 진영에서 나왔는데

사울과 그 휘하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레셋군을 맞이하여 교전(交戰)하던 격전지(삼상 31:1-7)에서부터 도망쳐 나온 것을 가리킨다.

 

그의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더라

이는 그 당시 근동 지방 사람들이 극한 슬픔을 표시하던 한 방법이다(수 7:6, 삼상 4:12). 특히 그중에서도 자신의 옷을 찢는 행위는 극도의 고통이나 번뇌에 사로잡혔을 때 참을 수 없는 슬픔을 나타내던 한 표현법이다. 한편 그 밖에도 고대 근동인들은 금식, 굵은 베옷을 입는 것, 허리에 굵은 베를 띠는 것 따위로 자신의 슬픔을 표현하곤 하였다(창 37:34, 삼상 31:13, 왕상 21:27, 시 35:13). 그러나 본 절에 나오는 이 사람의 행위는 다음에 이어지는 그의 위증(僞證)에 비추어 볼 때(5-10절) 전적으로 거짓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윗에게 … 엎드려 절하매

이는 곧 다윗을 자신의 주(主)로 인정하는 경외와 복종의 자세이다. 즉 이는 이제 죽은 사울에 이어 이스라엘의 차기(次期) 왕위에 오를 자가 곧 다윗임을 인정하는 행위이다. 왜냐하면 땅에 두 활과 무릎이 닿을 정도로 부복하는 행위는 당시 백성들이 자신의 군주나 지도자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하던 자세였기 때문이다(14:4, 19:18, 창 42:6, 삼상 24:8, 왕상 18:7, 왕하 2:15).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도 인간적으로 씁쓸한 감정을 떨칠 수 없다. 왜냐하면 얼마 전까지도 사울 휘하에서 충성을 다하던 자가 사울이 죽자(1절) 바로 다윗에게로 도망쳐 와 이처럼 새로운 충성을 표하니 그의 약삭빠름과 간특함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풀핏 주석, 매튜헨리 주석).

 

 

사무엘 하 1장 3절

 

다윗이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 왔느냐 하니 대답하되 이스라엘 진영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하니라

 

이스라엘 진영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이와 같은 보고를 올리고 있는 이 아말렉 사람은 아마도 이스라엘 군대에 고용된 용병이었을 것이다(8, 13절). 그러기에 그는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패하고 사울마저 위기에 처하자(4-10절, 삼상 31:1-6) 진영을 이탈하여 도망쳐 나왔을 것이다.

 

 

사무엘 하 1장 4절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너는 내게 말하라 그가 대답하되 군사가 전쟁 중에 도망하기도 하였고 무리 가운데에 엎드러져 죽은 자도 많았고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 하는지라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아말렉 사람의 보고에 대하여 다윗이 좀더 구체적인 전황(戰況)을 묻고 있다. 즉 다윗은 이스라엘군이 어떠한 형편에 처했기에 아말렉 용병이 도망쳐 나올 정도였는지 무척 궁금했던 것이다(Keil & Delitzsch). 한편 이 같은 다윗의 물음은 과거 아벡 전투의 결과에 대하여 엘리 제사장이 초조한 심정으로 묻던 질문과 꼭 같다(삼상 4:16). 더구나 이 두 경우 모두 (1)이스라엘의 대전국(對戰國)이 블레셋이며 (2) 이스라엘군이 참패를 당한 점 (3)그리고 그 결과 이스라엘에 새로운 지도자가 출현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처럼 과거 아벡 전투 결과, 엘리에서 사무엘로 통치권의 이동이 이루어졌듯(삼상 4, 7장) 이제 길보아 전투(삼상 31장) 결과, 사울에게서 다윗에게로 통치권이 전환되게 된 사실(2:1-4)은 배후에서 역동적으로 인간의 역사를 주장하시며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새삼 느끼게 해 준다. 즉 비록 인간의 역사는 실패로 끝나는 것 같으나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 가운데서 당신의 뜻과 계획을 한 치의 차질도 없이 성취시켜 나가고 계신다.

 

군사가 …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

이미 삼상 31:1-7에서 자세히 언급된 상황이다. 이 같은 이스라엘의 대패(大敗)는 하나님께서 범죄한 사울에게 주셨던 예언(삼상 13:14, 15:23, 26, 28, 28:19)의 성취라는 의의를 지닌다.

 

 

사무엘 하 1장 5절

 

다윗이 자기에게 알리는 청년에게 묻되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죽은 줄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사울과 … 죽은 줄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은 다윗의 심정이 역설적으로 드러나 있다. 여기서도 우리는 다윗의 위대한 신앙 인격을 엿볼 수 있다. 즉 그는 지금껏 자신을 박해하던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기는 커녕 오히려 이스라엘의 지도자와 그 아들 요나단이 전사한 것에 대하여 충격과 당혹감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사무엘 하 1장 6절

 

그에게 알리는 청년이 이르되 내가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가 보니 사울이 자기 창에 기대고 병거와 기병은 그를 급히 따르는데

 

청년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아르’는 유년기에서 청년기에 이르기까지의 소년, 소녀, 청년, 처녀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용병으로 전투에 참여한 점으로 보아 여기서는 20세 전후의 청년을 가리키는 것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공동번역 및 대부분의 영역본(KJV, NIV, RSV)들은 이를 ‘젊은이’(young man)로 번역하고 있다.

 

내가 우연히 … 올라가 보니

아말렉 청년의 거짓말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있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사무엘상 마지막 장에 의하면 사울의 죽음을 목격한 자는 그의 ‘병기 든 자’로서 처음부터 사울과 함께 길보아 전투에 참여했던 것으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삼상 31:1-6).

 

길보아 산

이스르엘 골짜기에 위치한 해발 497 m의 석회암 구릉이다. 삼상 31:1 주석 참조.

 

사울이 자기 창에 기대고

혹자(Clericus)는 이를 사울이 창을 사용, 자살을 시도하려 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기대다’에 해당하는 ‘솨안’은 ‘기대다, 쉬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는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극도로 지친 사울이 땅에 꽂힌 자신의 창을 의지한 채 힘들게 겨우 서 있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봄이 낫다(Lange). 이는 당시 위기에 처해 있던 사울의 비참한 형편을 분명히 증거해 준다.

 

병거와 기병은 그를 … 따르는데

다시 한번 아말렉 청년의 거짓말이 드러나고 있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병거는 평지에서나 사용 가능한 도구이지 산에서는 그 사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스라엘군이 블레셋군을 피해 길보아 산으로 도망친 이유도 저들이 병거를 타고서 추격해 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삼상 31:1). 그러자 그 때 블레셋군은 병거나 기병대신 ‘활쏘는 자들’을 동원하여 이스라엘군을 추격했었다(삼상 31:3).

 

 

사무엘 하 1장 8절

 

내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하시기로 내가 그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이니이다 한즉

 

나는 아말렉 사람이니이다

사울의 죽음과 관련된 아말렉 청년의 보고(6-10절)가 완전히 날조된 거짓 보고임을 드러내 주는 결정적 단서이다. 왜냐하면 할례 받지 못한 자들에 의해 죽임 당할 것을 두려워했던 사울(삼상 31:4)이 스스로의 신분을 ‘아말렉 사람’이라고 밝힌 소년에게 자기를 죽여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9절)은 논리적 모순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사무엘 하 1장 9절

 

또 내게 이르시되 내 목숨이 아직 내게 완전히 있으므로 내가 고통 중에 있나니 청하건대 너는 내 곁에 서서 나를 죽이라 하시기로

 

내가 고통 중에 있나니

직역하면 ‘고통이 나를 붙잡았다’는 뜻이다. 여기서 ‘고통’에 해당하는 ‘솨바츠’는 간혹 경련, 어지럼증, 현기증 따위를 의미하기도 한다(De Wette, Hesenius, Lange, Wycliffe, Pulpit Commentary). 그러나 전후 문맥을 보아 여기서는 쫓아오는 적들을 도저히 피할 수 없다고 느낀데서 온 ‘공포’나 ‘두려움’을 가리키는 듯하다(Matthew Henry). 이처럼 심령의 평안을 잃어버리고 죽음의 공포나 인간적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일반적 현상이다.

 

 

사무엘 하 1장 10절

 

그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의 곁에 서서 죽이고 그의 머리에 있는 왕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 하니라

 

엎드러진 후에는

여기서 ‘엎드러지다’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분명치 않다. 이에 해당하는 원어 ‘나팔’은 ‘쓰러지다’는 뜻이다. 따라서 혹자는 이를 사울이 창에 엎드러져 자살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주장하기도 한다(Matthew Henry).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를 사울이 블레셋에게 ‘패배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Lange, Keil & Delitzsch, Pulpit Commentary).

 

그의 곁에 서서 죽이고

이처럼 아말렉 청년은 자신이 사울의 부탁을 받고서 사울을 죽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삼상 31:3-4에는 사울이 블레셋군이 쏜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자 절망하여 자살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면 이같은 차이점에 대하여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에 대하여 학자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1) 성경은 성령의 영감(靈感)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여러 자료들을 모아 편집한 것이기 때문에 편집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라는 견해(Ewald). (2) 사무엘상, 하의 저자가 동일인이 아니기 때문에 생긴 차이점이라는 견해(Wordsworth). (3) 아말렉 청년이 다윗으로부터 보상을 받기 위해 사울이 자결한 사실을 숨긴 채 거짓 증언을 했기 때문에 생긴 차이점이라는 견해(Lange) 등이다. 이 중 첫 번째 견해는 성경영감설 자체를 부인하는 자유주의적 견해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리고 두 번째 견해는 사무엘상, 하의 저자가 비록 다르다 할지라도 동일한 사실에 대해서는그 내용을 서로 달리 진술할 수 없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세 번째 견해는 지금껏 우리가 살펴본 바와 일치한다. 즉 사울의 죽음에 관한 아말렉 청년의 보고는 처음부터 거짓으로 일관된 위증(僞證)이었다. 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세 번째 견해를 지지하고 있다(Brown, Fausset, Jamieson, Rust, R. H.Pfeiffer).

 

왕관

원어 ‘네제르’는 일반적으로 ‘왕관’(crown)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블레셋과의 전투에 나선 사울이 이러한 왕관을 착용했을리는 만무하다. 아마 이는 사울의 투구에 둘러 있던 좁다란 금띠로서 왕권을 상징하던 것인 듯하다.

 

팔에 있는 고리

사울이 팔에 차고 있던 고리는 고대 근동의 군지휘관들이 흔히 지니고 있던 장신구 중의 하나이다(민 31:50). 오늘날 발굴된 앗수르의 조각물들을 보면 손목과 팔에 고리를 찬 병사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Lavard, Wycliffe).

 

 

사무엘 하 1장 12절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저녁 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울며 금식하니라

금식 역시 극한 슬픔을 나타내던 한 방법이다. 2절 주석 참조. 그런데 이러한 다윗의 슬픔은 지극히 신앙적인 것이었다는 의의를 지닌다. 왜냐하면 다윗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슬퍼했기 때문이다. (1) 그의 동포들이 살육당했기 때문이다. (2) 그 중에는 그의 절친한 친구 요나단도 있었다. (3)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로서 여호와의 백성이 짐승 같은 이방인에게 짓밟혔기 때문이다. (4) 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으로 기름 부음 받은 왕 사울이 이방인의 손에 의해 죽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과거 사울은 하나님의 성호(聖號)로 기름 부음 받은, 즉 하나님의 권위를 부여받은 신정 국가의 왕이었다(삼상 10:17-24). 따라서 그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죽은 것은 곧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의미한다. (1) 하나님의 언약이 파기됨. (2) 사울과 그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런 권위가 떠남. 이러한 까닭에 다윗은 사울에 대한 그의 사사로운 감정을 초월하여 진정으로 사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즉 다윗은 사울 왕국이 인간이 아닌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아 이방인들에게서 조차 능욕(凌辱)당한 사실을 못내 안타까워하며 슬퍼하였다.

 

 

사무엘 하 1장 13절

 

다윗이 그 소식을 전한 청년에게 묻되 너는 어디 사람이냐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나는 … 아들이니이다

이와 관련하여 매튜 헨리는 한 유대인 전설을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곧 이 아말렉 청년이 사울의 마부였던 도엑의 아들이었다는 전설이다. 그에 따르면 사울은 자결하기 전에 자신의 왕관과 팔고리를 이 청년에게 건네 주면서 다윗에게 바치라고 명하였다 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전설일뿐 그 사실을 믿을 만한 근거가 없다.

 

외국인

이에 해당하는 원어 ‘게르’는 이스라엘에 임시로 체류하는 타국인(히, 노크리)과는 달리 이스라엘에 정착하여 그 사회에 동화(同和)된 이방인을 의미한다(출 22:21, 23:9). 이들은 유대 후기에 완전한 시민들처럼 대우를 받았으며(겔 47:22), 제3의 십일조를 분배받는 특권을 누렸다(신 14:29). 또한 이들은 여호와 종교로 개종할 경우 이스라엘인과 다름없이 율법에 대한 책임이 있었으며, 동시에 율법의 보호를 받았다(출 12:48-49, 레 16:29, 17:8,15, 18:26, 19:34, 24:22, 25:6, 신 1:16, 10:18, 16:11). 뿐만 아니라, 이들은 법소송에서 위대하신 영주, 곧 하나님께 직접 호소할 수 있었다(레 24:22). 그러나 이들은 이스라엘인과 같이 땅을 소유할 수는 없었다. 이것은 분명 외국인이 갖는 불이익이었다. 때문에 아말렉 청년은 이러한 불리한 입장으로 인해 다윗에게 아첨하려 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Rust).

 

 

사무엘 하 1장 15절

 

그를 죽이라

이처럼 다윗이 아말렉 청년을 죽인 이유는 단순히 그가 정치적인 차원에서 사울을 죽였기 때문만이 아니다. 대신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1) 그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인 것은 여호와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였으며(삼상 24:11, 31:4), 또한 신정 국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움 받는 자의 왕권을 침해하는 행위였다. (2) 아말렉 소년은 이스라엘에 귀화한 자로서 이스라엘의 법도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3절 주석 참조. 즉 그는 적어도 이스라엘 사회가 귀화한 외국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었는지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에 보답하는 의미에서도 이스라엘의 법도와 규례를 지키며 또한 그 왕에게 충성을 다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사울을 살해하였으니 은혜를 악으로 갚은 셈이다. 따라서 다윗이 그를 처단한 것은 하나님의 실추된 권위를 회복하는 행위인 동시에, 여호와의 권위에 대적한 악을 제거한 공의로운 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 즉 그는 이와 같이 공의로운 처단을 함으로써 은연중 신정 국가의 왕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사무엘 하 1장 16절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지어다

성경에서 피는 생명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 영혼이 깃든 처소로까지 묘사되어 있다(창 9:4, 레 3:17, 17:11, 14). 그러나 여기에서 피는 최고의 형벌, 또는 죄에 대한 책임 등 처벌을 의미한다. 그리고 머리는 개인의 인격과 육체, 생명 따위를 의미하는 대표 개념이다. 따라서 이 말은 ‘피를 흘린 그 책임이 바로 네 자신에게 있다’는 뜻이다. 즉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창 9:6)라는 원리에 따라 다윗은 사울을 살해한 피의 대가를 아말렉 청년에게서 찾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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